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복수노조의 훼방꾼

지난 2009년 여름 어느 날 장석춘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과 점심을 같이했다. 노동계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던 노동조합법 개정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복수노조요? 당연히 허용해야죠. 단 창구만 모두 열어놓는다면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는 노사 자율로 결정하면 될 일입니다." 노조법 개정의 핵심에 대한 그의 입장은 이 두 마디로 요약된다. 그는 이 얘기를 평소의 무표정한, 그래서 아무런 여지를 남기지 않는 단호해 보이는 자세로 말했다. 노조법 재개정 뒤엎은 한노총 그는 그때 진짜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그는 실제로 그해 말까지, 정확히 말하면 그해 12월3일까지 자기 입장을 지켜냈다. 그리고 뒷날인 4일 저녁 임태희 노동부장관, 이수영 경총 회장과 함께 노사정 합의문에 서명을 했다. 노사정 3인은 복수노조는 허용하되 창구는 단일화하고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은 금지하되 타임오프제를 도입하는 데 대해 합의했다. 장 위원장은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꿨을까. 한국노총 일부 조합원의 지적처럼 '배신'을 한 이유는 뭘까. 모든 사안은 따로 떼어놓고 보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흐름과 맥락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 장 위원장의 입장도 그 자체만 보면 번복이요, 배신이지만 전체를 구성하는 일부로 보면 결국 그렇게 될 일이었다. 당시 노동계와 경영계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 모두가 암묵적으로 인정한 공통된 생각은 이런 거였다. 복수노조 창구를 무한정 열기가 어렵다는 것은 노동계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계속 고집을 피우는 것은 전임자 문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다. 경영계도 전임자 임금지급을 완전히 금지할 경우 대다수 소형 사업장에서 노조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를 얻어내기 위한 거래용일 뿐이다. 그렇게 노사는 서로 줄 걸 주고 받을 걸 받아 합의를 했다. 합의안은 노조법에 포함돼 그중 타임오프는 이미 도입됐고 복수노조는 오는 7월1일부터 시행된다. 서두가 길었다. 요즘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나오는 재개정 움직임에 대해 일침을 놓으려니 사전 설명이 필요했다. 현재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재개정 주장에 야4당이 동조하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도 가세하고 있다. 이 중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온 민노총과 민노당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한마디로 후안무치하다. 한노총은 노조법 개정의 주체였다. 자기가 한 일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불과 1년 6개월 전에 합의한 사항을 시행도 해보기 전에 부작용 운운하며 취소하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용득 현 위원장이 노조법 재개정을 내걸고 당선됐다는 점을 내세우고 싶은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전임 위원장의 재임 기간이 역사에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위원장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한노총이 전에 한 일을 물러야 한다면 앞으로 누가 한노총을 믿고 약속을 할까. 표심에 춤추는 정치권도 반성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재개정 목소리를 높이는 속뜻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내년 총선과 이후 대선에서 표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한노총과 똑같이 노조법 개정의 주체였다는 점에서 똑같이 비난받아야 마땅하며 민주당 역시 당시 자당 소속인 추미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노조법 개정안의 상임위 통과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추 위원에게 당 차원에서 징계를 했다는 점은 반박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개정안 통과 뒤 1년 6개월 동안 조용하다가 이제 와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참 모양새가 좋지 않다. 복수노조는 노동계가 줄기차게 실시를 주장해온 사안이다. 복수노조는 '결사의 자유'에 기반을 둔 것으로 국제노동기구(ILO) 및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등은 그동안 여러 번 우리나라에 복수노조허용을 권고 및 요구해왔고 정부 역시 몇 차례에 걸쳐 실시를 약속한 바 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 총회에서 전세계 회원국가에 복수노조제도와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를 소개하며 이의 시행을 기정사실화했다. 시행을 유보해 세계인들의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복수노조는 노사정이 도입을 약속한 지 13년 만인 2009년 말 법률 작업이 이뤄졌고 그로부터 1년 6개월 뒤인 이제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역사의 흐름이 된 만큼 이를 거스를 수도 없고 거슬러서도 안 된다. 노동계와 정치권의 반성을 촉구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