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2일] <1437> 아미스타드

1839년 7월2일 새벽, 서인도제도 해상. 길이 37m짜리 스페인 범선 ‘아미스타드’호에서 노예로 팔려갈 53명의 흑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사투 끝에 배를 접수한 흑인들은 백인들을 처형하고 두 명만 남겼다.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뱃길과 항해술을 몰랐기 때문이다. 백인 선원들이 낮에는 동쪽으로 항해하고 밤에는 서쪽으로 되돌아가는 통에 바다 위를 맴돌던 아미스타드호는 거사 한달 보름 후 미 해군에 발견돼 미국 땅에서 재판을 받았다. 재판의 논점은 흑인들의 지위. 뉴헤이븐 지방법원은 ‘흑인들은 불법 납치된 자유인으로 백인에 대한 저항과 살인도 정당방위’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은 국내외적 갈등을 낳았다. 스페인은 ‘화물’인 노예의 인도를 요구하고 남부 농장주들은 백인을 죽인 유색인종에 대한 일벌백계를 주장했다. 아미스타드호를 발견한 미국 해군조차 연방법의 규정을 들어 재산(노예) 분배를 요구하고 나섰다. 결정적으로 재선을 위해 남부의 지지가 필요했던 밴 뷰런 대통령이 항소해 재판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최종심에서 흑인들의 변호를 맡은 사람은 전직 대통령인 존 퀸시 애덤스. 결국 연방 대법원은 1841년 ‘스페인 법에서도 흑인들은 자유인’이라는 판결을 내리고 이듬해 흑인들은 자유인 신분으로 아프리카에 돌아갔다. 영화로도 제작됐던 아미스타드호 사건은 흑인과 소수인종에 대한 탄압으로 일관한 초기 미국사의 한 줄기 빛으로 남아 있다. 당시 스페인 대사는 ‘대통령의 뜻이 통하지 않는 법원은 자격이 없다’며 항변했다. 과연 그럴까. 소수를 위해 변호에 나서는 전직 대통령의 존재와 살아 있는 권력을 넘을 수 있었던 법원. 19세기 중반 미국의 양식과 양심 앞에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이 부끄럽다. 권력에 종속되지 않는 법이 국가의 융성을 이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