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6월 30일] 어느 부행장의 해고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은행업은 이제 후방 지원 산업이 아니라 그 자체가 국가 경제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성장 동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예금ㆍ대출 이자 따먹기식 등의 국내 영업에서 벗어나 글로벌 수준의 투자은행(IB) 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창구 지점 수백명을 합쳐야 낼 수 있는 수익을 인수합병(M&A), 파생상품 투자에 유능한 IB 직원 한명이 낼 수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고 세계에 유동성(돈)이 넘쳐나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이 같은 구조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 뻔하다. IB 역량을 키우려면 사람과 네트워크가 필수다. 이런 터에 지난주 전격 단행된 모 시중 은행 IB 담당 부행장의 해고를 보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수천억원의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투자 손실을 초래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막대한 손해를 봤으니 경영상 책임을 묻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해고 과정의 전말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이 나자 이 은행의 CEO는 IB는 사람이 중요하다며 수천명의 간부급 직원이 모인 연례 단합대회에서 IB 파트에 용기와 격려를 보내줄 것을 공개적으로 부탁했다. 미국 유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조차도 하루 아침에 붕괴할 정도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불가항력적인 세계적 금융 쓰나미였고 이런 마당에 국내 은행업계의 IB를 선도해온 책임자를 쳐내는 것은 오히려 IB 성장의 싹을 잘라내는 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부행장은 은행에 IB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때인 3~4년 전에 3~4명의 IB팀을 꾸렸고 이를 150명이 넘는 조직으로 성장시켜 지난해만 5,000억원 전후의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 은행의 최대주주인 정부는 IB 책임자를 문책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이 은행의 CEO가 교체되면서 전격 해고됐다. 정부는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힌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을 경우 감사원 감사 등에서 문책받을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행장의 해고가 가뜩이나 척박한 국내 IB 환경과 시스템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가 은행산업도 이제 정부의 온실 속에 있는 ‘기관’이 아닌 ‘회사’라고 강조, 글로벌 시장 진출과 혁신적 사고를 장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도전의 싹을 자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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