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니 곰리의 'Field' |
|
"한 획이란 존재의 샘이요, 모습의 뿌리다. 그것은 신에게는 드러내지만 사람에게는 감춘다. 세상 사람은 알기 어렵다. 그러므로 한 획의 법은 스스로 세워야 한다."
청나라 초기 화가인 석도(石濤)는 유명한 화론집 '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畵語錄)'에서'일획론(一劃論)'을 통해 이같이 설파했다. 예술가들은 한 획으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정신성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6일 개막하는 드로잉전 '한 획'은 이 같은 의도를 담고 있다.국내ㆍ외 작가 15인을 엄선한 자리로, 작가의 머릿속에 잠시 들어갔다 온 듯 정신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탐색전' 같은 전시다.
입구에서 맨 먼저 만나는 리처드 세라의 작품은 녹아내리는 크레용인 '페인트스틱'으로 화면의 아래 절반이 까맣게 차 있다. 빈 여백의 울림과 검정의 깊이감은 회화에 대한 세라의 굳건한 믿음을 웅변한다. 1994년 영국 터너상 수상자인 안토니 곰리의 드로잉 2점도 눈길을 끈다. 조각으로 유명한 곰리의 자유로운 생각의 과정을 집약적으로 만날 수 있다.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대표작가였던 아니쉬 카푸어의 드로잉은 2차원과 3차원이 공존하는 그의 조각만큼이나 다중적인 미감을 드러낸다.
1960~70년대 이탈리아의 전위적 미술운동인 '아르테 포베라'의 중심인물이었던 주세페 페노네가 지문을 찍은 뒤 이를 중심으로 촘촘한 동심원을 그린 작품'번식'은 생명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이우환의 드로잉과 수채화에서는 심오한 작가의 '생각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목도할 수 있다. 조각가 정현의 드로잉은 "몸과 신경선으로 그린다"는 설명처럼 심리와 감정을 압축한 문인화와도 같다. 철판에 흠집을 낸 뒤 녹으로 바꿔 표현한 이미지는 에스키스(작업 전 모형)를 뛰어넘은 독창성을 확보했다. 시몬 한타이(1922~2008)와 샘 프란시스(1923~94)의 대작을 비롯해 한국 추상 1세대인 정상화의 구작, 서용선의 자화상, 중국작가 류샤오동이 한국에서 작업한 드로잉, 젊은 작가 유현경의 남성 인체 연구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8월21일까지. (02)720-15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