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FTA, 국회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이후 최종 협정문을 공개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지난 7일 한ㆍ유럽연합(EU) FTA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이번 협상 타결 이후에는 중국ㆍ일본 등 나머지 주요 교역 상대 국가와도 연쇄적으로 FTA 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이처럼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거대 국가, 또는 지역연합과 FTA를 속속 체결해야 할 만큼 국내 산업의 경쟁력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농업 등 국내 산업 피해에 대한 대책과 비교우위 산업 육성책 등 세부 실천 계획을 마련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너무 앞서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일방통행에 대한 적절한 견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본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 참여정부에 대한 인기도가 높아졌다고 이같이 밀어붙이기식의 통상외교정책을 펼치는 것은 곤란하다. 최소한의 검증과 공론화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는 한미 FTA 최종 협정문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보는 꼼꼼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실효성 있는 FTA 대책을 세워서 농민 등 이해관계자를 먼저 설득해야 한다. 국회 비준 절차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과거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협상과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 보여준 우리 정부의 신중함은 어디로 간 것인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너무 신중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신속하게 판단해서도 안 될 일이다. UR 협상과 DDA 협상에서는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예외적 조치를 요구하면서 많은 시간을 끌었다. 식량 안보를 역설하고 개발도상국 대우를 요구했다. 그런 정부가 한미 FTA 협상 이후 이렇게 확 달라졌다. 부분, 단계적 개방원칙을 고수해왔던 참여정부에 완전 개방이라는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시장 개방정책을 속전속결 전략으로 바꾸면서 국민은 급전직하의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처럼 현기증이 날 판이다. 미국과의 힘겨운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EUㆍ중국ㆍ일본 등은 손쉬운 상대라고 판단하는 것일까. 미국은 세계 최대시장이며 우리에게는 전통적으로 우방 국가이고 군사동맹 등 특수관계도 있어 한미 FTA를 단순히 경제적 의미로만 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여느 협상과 달리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는 등 호의를 베푼 측면이 많다. 협상 테이블에 나서기에 앞서 스크린 쿼터 문제를 해결했고 뼛조각이 문제였던 쇠고기는 의제는 아니지만 이를 전폭 수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EU나 중국ㆍ일본 등과의 FTA는 철저하게 실리를 따지는 경제외교로만 접근해야 옳다. 다시 말해 미국보다 공을 덜 들인 이들 국가에 대해 무임승차 혜택은 없는가 살펴야 한다. 반면 이들 국가와의 협상이 한미 FTA에 비해 진일보해도 난처해진다. 더 높은 수준의 개방에 합의하면 한미 FTA도 재협상 없이 똑같은 적용을 받는다. 흔히들 한미 FTA를 구한말 개항에 이은 제2의 개항으로 비유한다. 관세 철폐와 세제 개편 등으로 국가 재정에 중대한 결손이 예상될 뿐더러 가계와 기업에도 일파만파의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미 FTA가 2~3년 후 본격적으로 발효되면 국민생활은 지금과는 확연히 달라질 게 분명하다. 지금부터라도 시장 개방 충격에 대한 비책을 세워야 한다. 후속 입법조치와 각종 제도 개선도 서둘러야 한다. 국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국회는 FTA를 새로운 기회로 삼기 위해 지혜와 슬기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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