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ㆍ거제ㆍ포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4,000달러가 안되는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의 소비 수준을 보이는 도시다. 대규모 제조업체들에 고용된 수십만명의 직원들과 하청기업들이 몰려 있어 대기업 등이 창출한 수익이 하청업체로, 직원 가정으로 흘러가 지역의 소득이 되고 소비력이 된다. 이 지역의 은행ㆍ음식점 같은 서비스 업체도 대기업과의 직간접 거래를 통해 수익을 나눈다. 제조업, 특히 제조 대기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최근 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이 대기업 때리기에 한창이다. 한때 공정사회를 표방하며 재벌 규제를 외치던 정부는 정당들이 나서자 기업 옹호 쪽으로 선회, 공정사회와 '기업 프렌들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中企ㆍ서민상권 위협은 이제 그만
대기업도 골목상권과 중소기업이 치열할 경쟁을 벌이는 내수업종에 뛰어들어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에 빌미를 제공했다. 30대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가 2006년 731개에서 지난해 1,150개로 419개가 늘었지만 대부분 첨단 분야의 제조ㆍ연구개발 회사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연간 수조~수백조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순대ㆍ청국장ㆍ물티슈 사업에 뛰어들거나 오너의 2ㆍ3세들이 특수관계를 내세워 빵ㆍ커피 등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먹고 입고 노는' 사업을 벌여 영세상인ㆍ제조업체의 생계를 위협한 것은 심했다. 삼성그룹이 문제의 빵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자 비슷한 계열사를 둔 LG와 현대차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자재 구매대행, 제품 판매대행 같은 순수 서비스 사업도 대개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차지여서 모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불공정거래의 온상이 된다. 대기업들이 거의 하나 이상의 광고대행사를 갖고 있는 것이나 소비성자재구매대행업(MRO)을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말 정부가 대기업의 MRO를 '지하경제'라고 비판하자 일부 대기업은 이 사업에서 철수했지만 여전히 운영 중인 경우가 많다. 대기업들이 예외 없이 건설회사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것도 큰 틀에서 보면 같은 맥락이다.
제조업은 자동화 기술의 발달 등으로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이 대세다. 고용을 줄여도 이익이 늘어난다면 직원들이 고액 연봉 잔치를 벌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근로환경이 열악한 중소업계나 실직자의 눈에는 '그들만의 잔치'로 비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대기업의 투자를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중소기업고유업종ㆍ출자총액제한 제도를 없앴다. 일자리 창출에는 서비스업종이 제조업종보다 효과적이라며 서비스업 진출의 길도 활짝 열어줬다. 그런 점에서 대기업들이 잇따라 골목상권을 침해한 데는 정책 실패의 책임도 있다.
여야는 최근 대기업의 탐욕을 규제하겠다며 출자총액 규제의 부활ㆍ보완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폐지 이전에도 예외조항이 많아 실효성이 떨어졌다. 따라서 부활 운운하는 것은 전형적인 선거용 포퓰리즘이다. 그런 방법보다는 여론의 감시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더 효과적이다.
정부는 고임금 中企 육성 힘써야
정부는 국내 기업체 수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외국인 근로자의 저임 체질로 굳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과 봉급 경쟁을 벌릴 수 있는 중소기업이 많이 나와야 청년실업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젊은이들의 자존심을 손상케 하는 아르바이트 수준의 임금으로는 중소기업의 미래도 없다.
선진국 경제의 체질 약화는 근본적으로 제조업의 쇠퇴에서 비롯됐다. 이를 금융 등 서비스 산업으로 만회한다는 전략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계를 드러냈다. 대기업들은 출총제 폐지의 본뜻을 살려 쌓아놓은 돈으로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 투자에 전력을 다하고 서민상권과 충돌하는 서비스업종 진출은 자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