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육성 대책에서 조달시장을 풀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중소기업은 다 없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22일 취임 2개월을 맞아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중견기업들의 과도한 지원요구는 조정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그는 위장 중소기업의 공공조달시장 퇴출과 관련해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시장에 참여하는 2만7,000여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다음달 중순에 발표하고 문제 기업이 조달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 청장은 이어 "일반 기준과는 별도로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가 필요한 공공시장에서는 중기 기준을 다소 강화하도록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소기업들이 공공조달시장에서 성장해 민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도록 배려하겠다는 얘기다.
중기청의 소상공인 정책에 대해서는 자영업 창업을 촉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한 청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높은 자영업 비중을 더 낮춰야 한다"면서 "생계형 창업 숫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벤처도 늘면서 자영업 비중이 높은 기현상이 나타났는데 벤처 창업 수만 많아졌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좋은 일자리 마련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한 청장은 이날 2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중기 정책 브레인답게 자신의 정책방향과 의견을 막힘없이 과감하게 풀어갔다. 일부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중소기업청에서 연구ㆍ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토론과 논의를 거쳐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겠다는 겸허한 자세를 보였다. /대담=이규진 성장기업부장 sky@sed.co.kr
한 청장의 두 어깨에는 중소기업 대통령을 표방한 박근혜 정부의 첫 중기청장이라는 막중한 책무가 얹혀 있다. 그 때문인지 최근 '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다음달에는 '중견기업 성장사다리 구축 대책' '자유무역협정(FTA) 대책' 등을 연이어 내놓아 중소기업 강국을 향한 총력전에 나설 계획이다. 또 다음달 '중소기업 범위 개편 용역' 결과가 나오면 합리적으로 중소기업 자격 개정작업도 추진할 방침이다. 초보 공직자답지 않게 상당히 과감한 정책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그는 "제가 느끼기에 중소기업의 경제상황이 상당히 힘들어 발상의 전환, 즉 돌파구(breakthrough)가 필요하다"며 "새 정부 출범 이후 6개월 이내에 방향을 설정한 뒤 업그레이드하고 보완해 실행할 수 있도록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청장은 또 "중기청 내에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중소기업 발전의 비전과 전략'이라는 중장기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9월께 관련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15일 중기청이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벤처창업 대책은 한 청장이 취임한 후 실질적으로 참여한 첫 작품이다. 창업→성장→회수→재투자ㆍ재창업의 과정이 막힘없이 순환하도록 엔젤투자 활성화를 비롯해 인수합병(M&A)시장을 살린다는 방안이 골자다. 창업정책이 정부에 의존해 자금만 많이 풀면 예전처럼 과잉공급 현상이 나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는 묻지마 엔젤이 많았는데 이를 막으려면 전문 엔젤투자 그룹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번 대책이) 창조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부처 간 협업해 멍석을 펴는 것"이라고 의의를 분석했다.
대기업집단의 M&A를 '문어발식 확장'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적 현실과 관련해 한 청장은 "시스코ㆍ인텔ㆍ구글ㆍ애플ㆍGE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은 전후방으로 100개 이상의 기업을 갖고 생태계를 구축했다"며 "이제는 기업 대 기업이 아니라 기업 생태계 간의 경쟁체제"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우리도 대기업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함으로써 유사한 구조를 갖추는 것이 벤처와 대기업 모두가 사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대기업의 벤처기업 인수를 죄악시하는 국민정서법 때문에 대기업들은 풍부한 자금여력이 있음에도 M&A를 통해 계열사를 늘리지 않고 필요한 기술과 인력만 빼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해당 중소ㆍ중견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전체적인 M&A시장 침체로 이어져 벤처생태계를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벤처가 엑시트(투자회수)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화되지 못해 창업해서 4~5년 고생한 뒤 대기업에 수천억원 혹은 조 단위의 금액을 받고 팔아 소위 '대박'을 치는 사례는 해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거래의 불공정, 제도의 불합리, 시장의 불균형'이라는 중소기업 3불 문제 해소에 대해서는 불합리한 3대 수수료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한 청장은 "대ㆍ중기 간 금리차별을 개선해 과도한 기업대출 수수료를 완화하고 백화점 판매수수료 가이드라인을 개발ㆍ보급해 인하시키겠다"며 "우대수수료를 적용 받는 중소가맹점 범위를 2억원에서 5억원으로 확대해 신용카드 수수료 추가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7년까지 국내 중견기업 4,000개를 만든다'는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중견기업 육성 대책에서는 퍼주기식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부가가치 창출력과 기술력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합한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중견기업의 글로벌 전문기업화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뜻이다. 한 청장은 "과거 1,000억 클럽에 대해 연구했는데 100개 중 90곳은 1,000억원대에서 정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글로벌 소비재(B2C)시장에서 5,000억원 이상 가능하도록 글로벌 중견기업 정책이 필요하다"며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힘든데 웅진그룹ㆍ주성엔지니어링ㆍ아이리버ㆍ태산엘시디 등은 야심차게 올라서다 고꾸라졌고 그나마 팬택 계열이나 NHNㆍ휴맥스 정도밖에 찾을 수 없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 청장은 "기업규모가 매출 3,000억원을 넘어서면 조직문화ㆍ마케팅ㆍ리더십 등이 기존과는 확 바뀌어야 탄력을 받고 성장할 수 있다"며 "성장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중기청이 조력자가 되겠다"고 중견기업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가업상속 문제에 대한 한 청장의 견해는 확고했다. 그는 "고용창출과 지속 가능성 차원에서 중소기업 가업승계는 원활하게 해줘야 한다"면서도 "국민적 정서에 맞지 않는 재산권 상속과 경영권 상속은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구체적인 해법을 묻자 "의결권 상속만 허용하고 무의결권 주식은 오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독일처럼 고용을 늘릴 경우 빠른 속도로 세금을 털어내주면 국민들도 공감할 수 있고 윈윈이 가능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 청장은 4~5년 전부터 '대기업 선도형' 동반성장을 설파해왔다. 그는 "기술탈취를 막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 지 2년반이 됐는데 제대로 된 게 한 건도 없다"며 "법적 처벌과 규제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동반성장 이슈를 풀기 위해서는 '슈퍼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이 먼저 나서 자율규제와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 청장은 소상공인에 대한 관심도 높다. 현장방문을 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시장을 찾는다. 그는 "앞으로 전통시장 정책은 상인들의 자립자활자족 의지를 끌어내 정부 지원과 접목시켜 지속 가능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소개했다. 반짝 지원으로 끝나면 결국 예산낭비에 그친다는 얘기다.
'경쟁력이 있어야 소비자가 찾는다'는 기본공식을 바탕으로 상인들의 의식변화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 청장은 "전통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상인들이 소비자 만족에 승부를 걸고 협동해서 살아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면서 "실제 잘되는 시장을 보면 중기청ㆍ지방자치단체장ㆍ상인연합회가 3각 체제로 협업이 잘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그가 예를 든 곳은 속초전통시장ㆍ나주목사고을시장 등이다. 이들 시장은 공통적으로 30대 젊은 층이 사무국장을 맡아 정보기술(IT)과 결합한 홍보 프로모션에 적극적이다. 시장 내에 커피숍ㆍ헤어카페를 만들고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을 도입해 구닥다리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과일ㆍ생선 등의 식품은 신선도를 유지하고 원산지 표시도 확실하게 해 신뢰감을 높였다. 한 청장은 "주차장과 미관을 개선하는 것은 하드웨어적인 필요조건이지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약력 |
중기·벤처분야 핵심 브레인…대선때 박근혜 대통령에 정책 조언 ■ 한정화 청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