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자통법 반대논리에 반대한다
이용택 ytlee@sed.co.kr
불과 4년 전만 해도 은행창구에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보험에 가입하려면 보험설계사를 찾아오게 하거나 보험사에 가야만 했다. 보험업계는 보험상품만, 은행은 은행상품만 팔 수 있도록 칸막이가 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난 2003년 8월 이름 자체도 생소했던 방카슈랑스(은행의 보험상품 판매)가 도입되면서 칸막이가 허물어진다. 그리고 몇 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이제는 은행에서 보험에 가입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물론 방카슈랑스 도입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수만 명의 보험설계사들이 연일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방카슈랑스 도입에 반대했다. 반발이 워낙 강해 일부 보험상품의 은행판매는 당초 일정보다 연기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상품별로 방카슈랑스가 도입돼 이제 종착역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보험과 종신보험의 은행 판매허용이 예정돼 있다. 내년에 이것마저 허용되면 은행은 거의 모든 보험상품을 팔 수 있게 된다.
단순히 금융산업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국내에 도입된 방카슈랑스는 분명 잘못된 제도다. 보험사의 은행 진출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방카슈랑스가 도입돼 보험산업의 입지는 줄어들고 반대로 은행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기존 사업에 더해 보험과 펀드까지 판매하는 은행은 더욱 비대해지고 금융 업종간 불균형은 심화됐다. 여기에 은행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꺾기'와 같은 불완전판매도 성행했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는데도 방카슈랑스가 단계별로 도입된 것은 이보다 추구해야 할 더 큰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크게 두 가지다. 그중 가장 큰 가치는 고객이 더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고객편익의 원칙이었다. 은행에서 보험상품을 팔 수 있게 되면 고객은 입출금을 하면서 펀드는 물론 보험 계약도 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보험업계가 방카슈랑스 도입을 반대할 때 은행권이 내놓은 논리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금융 업종간 칸막이를 없애 대형화와 겸업화를 도모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황하게 방카슈랑스를 거론한 것은 최근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도입과 관련해 정반대의 논리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은행권의 주장이다.
은행권은 자통법 내용 중 소액지급결제 업무를 증권사에 허용하는 것은 은행권의 고유영역을 침해하는 것이고 지급준비율 의무가 있는 은행과 달리 이런 의무가 없는 증권사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문제 모두 그동안 은행 중심으로 이뤄진 금융산업 육성책과 금융 업종간 불균형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엄청난 국민혈세가 들어간 은행은 예대마진 수익에다 펀드와 보험판매 수수료까지 더해지며 매년 사상 최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은행은 펀드와 보험을 모두 팔지만 보험사와 증권사는 은행 업무를 하지 못한다. 형평성 문제는 물론이고 금융 업종간 칸막이를 헐어 대형화와 겸업화를 도모한다는 원칙에도 어긋난다.
더구나 고객편익을 위해 방카슈랑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은행권의 자통법 반대논리는 고객편익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증권계좌의 고객예탁금으로도 카드를 직접 결제하고 송금, 은행 ATM 출금이 가능해지면 고객은 한결 편해진다. 또 은행자금이 대거 증권사로 빠져나갈 것으로 우려하지만 이는 고객과는 관계없는 사항이다. 금리를 더 많이 주는 쪽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것은 돈의 속성이다. 은행권도 그런 상품을 만들면 된다.
그나마 설득력 있는 것이 증권사에 소액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할 경우 결제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논리지만 은행보다 더 강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증권업계의 주장이다. 먼저 검증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이를 해보지도 않고 반대만 한다면 고객편익을 도외시한 밥그릇 싸움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자통법 반대논리에 반대한다.
입력시간 : 2007/04/12 1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