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3월 6일] <1637> 앙투안 앙리 조미니


SetSectionName(); [오늘의 경제소사 3월 6일] 앙투안 앙리 조미니 권홍우ㆍ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은행원과 군납품업자, 프랑스군 고위참모와 러시아 육군대장. 근대 군사이론의 창시자로 꼽히는 앙투안 앙리 조미니(Antoine Henri Jomini)의 인생역정이다. 경영서적에도 자주 등장한다. 1779년 3월6일, 스위스 레만호 부근 파이예른시에서 시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당초 인생항로는 은행원. 군대에 관심이 많았지만 부모의 강권으로 16세부터 바젤에서 은행업을 배웠다. 파리로 이주(17세)한 뒤의 직업인 주식중개에도 염증을 느낀 그는 꿈꾸던 대로 군복을 입었다. 친 나폴레옹 스위스 의용군 대위를 거쳐 군납품업을 시작한 그는 갑자기 유명 전략가로 떠오르고 프랑스군에 영입됐다. 각국의 전술을 분석한 보고서가 나폴레옹의 눈에 들었던 것. 프랑스군의 이탈리아 원정을 분석한 글로 그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병법의 대가'라는 극찬을 받았다. 고위 참모로 중용된 그는 프랑스 여단장과 남작 작위, 최고훈장을 받은 뒤부터 견제에 시달렸다. 모함을 받아 처지가 어려워지자 택한 곳이 러시아. 차르의 총애 속에 사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러시아군 근대화에 공을 세운 그는 은퇴(48세)할 때 대장까지 올랐다. 어떻게 적대적인 나라를 오갈 수 있었을까. 당시에는 오늘날보다 국가의식이 덜했는지 조미니와 더불어 불세출의 군사전략가로 꼽히는 클라우제비츠도 프로이센을 떠나 러시아군에서 복무하다 돌아온 적이 있다. 러시아군을 떠나 파리로 돌아온 그는 1837년 평생의 역작인 '전쟁술'을 펴냈다. 미국 내전에서도 남군과 북군 장교들이 조미니의 책에서 익힌 전술대로 싸웠다. 조미니는 오늘날 경영서적에서도 자주 나온다. 복잡한 상황을 꿰뚫는 통찰력을 그에게서 배우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조미니 전략론의 요체는 두 단어로 압축이 가능하다. '목표 설정과 집중.'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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