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10월 9일] 미래 오페라 종주국 꿈꾸며

며칠 전 한국이 낳은 국보급 성악가 중 한 분인 테너 김신환 선생님을 만나 우리나라 오페라의 발전 방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직도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발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계시고 현역으로 활약 중인 노장께서는 여러 말씀 끝에 "언젠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스승인 에토레 캄포갈리아니 선생이 이탈리아 민족이 오페라 종주국으로서 누려왔던 지위가 한국 민족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는데 지금 한국은 성악 대국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다. 경제성장 비해 예술지원 미미 전설적인 캄포갈리아니는 불멸의 테너 파바로티를 비롯해 수많은 명가수들을 길러낸 선생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이미 지난 198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 방송에 출연해 그와 같이 말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스승인 그가 동방의 작은 나라인 '꼬레아'를 두고 허튼소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 이유를 물어봤다. 선생께서는 캄포갈리아니가 그동안 여러 명의 한국인 제자를 지도해오면서 얻은 영감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그는 한국인들의 노래에 대한 열정과 자질을 보았고 그때 우리나라 성악계는 막 초창기를 벗어난 수준이었지만 앞으로 한국이 세계 오페라계를 위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읽은 것이다. 당시 캄포갈리아니의 발언은 이탈리아 정부의 문화정책 쇠퇴를 비판하는 자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탈리아가 누려왔던 오페라 종주국의 지위를 한국에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경제 발전 못지않게 문화 분야에서 큰 발전을 해왔고 이를 위해 정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에 힘입어 뮤지컬이나 영화 등 상업예술은 비약적인 성장을 해왔다. 그러나 정작 지원이 필수적인 순수예술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모든 예술의 집약체라고도 할 수 있는 종합예술인 오페라에 대한 지원은 아직 미미하다. 다른 순수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오페라 역시 뮤지컬을 탄생시킨 모태가 됐으며 무대의상ㆍ무대디자인과 무용ㆍ조명 등 인접한 예술장르는 물론 다양한 상업적 예술의 토대가 되고 있다. 한국 오페라는 김자경오페라단 같은 민간단체나 김신환 선생님 같은 개인의 노력과 열정을 바탕으로 발전, 캄포갈리아니의 찬사에 가까운 평가를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 오페라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를 잘 보존, 활용해온 유럽 여러 나라들은 수많은 파생적 문화 예술을 탄생시켰고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문화선진국으로 자리를 굳건히 하는데 초석이 됐다. 파바로티와 같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성악가의 자질을 발견하고 키워낸 세계 오페라계의 위대한 스승 캄포갈리아니의 지혜로운 눈이 한국을 세계 오페라의 미래의 종주국으로 지목한 지 26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오페라도 세계가 놀랄 만한 발전을 이뤄냈다. 이제 세계 오페라계에 어께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아시아 오페라의 메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캄포갈리아니의 예언은 이미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기업 차원서 후원 손길을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역시 정부와 기업의 이해와 지원 부족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제대로 한번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뜻 있는 기업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후원에 힘쓴다면 한국은 분명 캄포갈리아노의 예언처럼 세계 오페라를 이끄는 미래의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이뤄나갈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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