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입맛 쓴 사회공헌활동

14일 오전 한국은행 기자실에는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 하나가 배포됐다. 내년 말까지 이성태 총재와 금융통화위원, 감사, 집행간부의 보수를 지금 수준으로 동결하고 매월 기본급의 10%를 사회에 기부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연말을 맞아 훈훈한 미담쯤으로 보였지만 그 다음 대목이 눈에 띄었다. 직원들의 임금 인상도 최대한 억제하고 자원봉사 등 사회공헌 활동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고통 분담의 모범사례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노조 압박용인 셈이다. 현재 한은 등 7개 국책 금융기관은 정부가 임금인상률을 2% 수준으로 묶으려는 데 대해 노조들이 반발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에는 이들의 임금을 결정하는 ‘국책금융기관경영예산심의회’가 노조원들의 점거로 회의조차 열리지 못했다. 한은 집행부로서는 경영 혁신은 해야겠고 노조는 반발하자 ‘이기적으로 보이기 싫으면 동참하라’는 식으로 압박했다는 얘기다. 지난 10월에도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가 급여 일부를 반납하자 임원 및 부서장들도 급여 반납에 동참하는 한편 복지기금 가운데 일부를 떼어 불우이웃 돕기 등에 쓰기로 한 바 있다. 물론 이 같은 사회기부 활동은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또 운전기사의 연봉이 최고 9,100만원이라는 데서 드러나듯 국책 금융기관들의 방만 경영도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사회공헌 활동이 일종의 정치적 쇼나 시위용으로 변질된 데 대해서는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는 위기에 몰리면 기부를 늘리는 이상한 풍토가 있다. 재벌들이 경영권 편법 승계가 문제될 때마다 사재를 몇 천억원씩 털어 사회공헌 활동에 나서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철밥통’은 깨져야 하지만 국책 금융기관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많이 받으면 안된다는 논리도 재고돼야 한다. 연봉이 1,000만원이라 하더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고연봉이다. 마찬가지로 1억원을 받더라도 제 역할만 하면 된다. 더구나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한 무지로 외환위기까지 겪은 우리로서는 우수 인력을 공공기관에서 붙잡을 필요가 있다. 연봉 1억원짜리 금융정책 관련 인력이 10억원짜리 시장 인력을 당해낼 수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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