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한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젊은 임원 K씨는 자동차를 구매하면서 이용금액에 따른 포인트를 항공 마일리지로 전환해주는 신용카드에 새로 가입했다. 3,000만원이 넘는 대형 승용차를 카드로 계산해 받는 마일리지를 이용해 가족과 해외여행 계획까지 세웠다. 그런데 카드 회사는 1,000만원에 대한 포인트만 마일리지로 전환해 준 것. 회사에 물어보니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3년이 지나야 마일리지로 전환해준다는 것이었다. 카드회사들은 자동차를 구매하는 고객들이 처음에 마일리지 혜택을 노려 가입했다가 바로 카드를 없애버리는 ‘먹튀’를 막기 위해 일부 금액에 대한 포인트만 마일리지로 전환해주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2~3년 뒤로 포인트 전환시점을 미루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드회사가 회사 규정이나 약관을 들먹이며 포인트 전환을 거부할 때 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그러나 ‘까칠한’ K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카드사에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라며 먼저 금융감독원이나 소비자보호센터에 알리고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K씨는 주장한다. 카드회사들은 포인트가 사실상 현금이나 다름없다고 광고하면서 정작 2,000만원이 넘는 거액에 대한 포인트는 카드회사가 이자도 지불하지 않고 2~3년 거저 보유하고 있으니 이는 고객들의 돈을 갈취하는 거나 다름없다는 것. K씨는 이 같은 논리를 펴며 회사를 압박했고, 결국 카드사는 고위 임원의 재량권을 발휘해 약관에는 없지만 2,000여만원에 해당하는 포인트를 당장 마일리지로 전환해 주도록 허용했다. K씨는 이처럼 까칠하게 모아온 항공 마일리지를 이용해 가족 4명이 비즈니스 클래스로 미국 플로리다 여행을 다녀왔다. 산업 전반에 걸쳐 소비자들의 권익이 높아졌지만 금융부문에서는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법률 규정과 약관 때문에 주눅이 들어 자신의 권익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고객들이 많다. 그러나 ‘우는 아이 젖 준다’는 옛말도 있듯 K씨의 사례처럼 회사의 약관이나 규정이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한다고 판단될 때는 침묵보다 까칠하게 따지는 것이 재테크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최근 벌어졌던 씨티카드의 마일리지 혜택 축소 연기 방침도 까칠한 소비자들의 한판승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씨티카드의 ‘아시아나클럽 마스터카드’는 1,000원당 2마일리지를 적립해주는 높은 전환율로 인기를 끌었던 상품. 그러나 지난해 11월 한국씨티은행은 올해 1월부터 마일리지 전환율을 1,500원당 2마일리지로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씨티카드에 가입했던 H씨는 “마일리지 때문에 비싼 연회비를 물며 가입했는데, 가입하자마자 마일리지 혜택을 줄이겠다는 회사 방침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분개했다. 씨티카드 고객을 중심으로 항의가 물밀 듯 쏟아졌고 심지어 일부 고객들은 소송을 준비하겠다고 대응했다. 결국 씨티은행은 “충분한 고객 안내 기간을 갖겠다”며 아시아나 카드 마일리지 적립축소 적용일을 1월1일에서 5월1일로 연기했다. 이미 지난해 12월에는 LG 트레블카드의 마일리지 축소에 대한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이 ‘충분한 공지없는 마일리지 축소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었다. 카드 포인트 뿐 아니라 대출금리도 까칠한 고객일수록 이득을 볼 수 있다. 은행 대출약관에 보장돼 있는 ‘금리인하 요구권’은 신용대출로 돈을 빌린 고객들이 당당하게 금리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이다. 지난 2003년부터 도입된 이 제도는 고객들의 신용도가 높아지면 그에 따라 금리를 낮춰달라고 은행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더 높은 신용을 얻고 있는 직장으로 옮겼거나 ▦승진 등을 통해 연봉이 높아진 경우 ▦전문자격증을 취득한 경우 금리인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고객의 요구가 은행 심사과정을 통과하면 대출금리는 연0.6~1.3%포인트까지 낮아질 수 있다. 단 대출을 받고 3개월이 경과해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또 만기가 될 때까지 두 차례만 금리 인하요구권을 쓸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한 적이 없고 승진에서도 누락한 고객은 금리를 낮출 길이 없을까. S은행에서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하고 있는 O씨는 자신이 쓴 대출에 대한 이자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O씨는 “예전에는 이자를 떼 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요즘 금리수준이 워낙 낮기에 ‘도대체 금리가 어느 정도이길래 이 정도 이자가 나올까’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은행을 방문한 O씨는 자신의 대출금리가 13.5%나 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가 항의를 하자 은행 직원은 “당신의 신용도에 따라 책정된 이율”이라는 형식적인 답변을 해왔다. 당시 O씨가 포기하고 돌아섰다면 그는 고율의 대출이자를 계속 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O씨는 자신의 은행거래 이력과 상환이력을 설명하며 은행에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은행은 신용카드와 당시 판촉행사를 하고 있던 소득공제 상품 가입을 조건으로 O씨의 금리를 8.75%로 낮춰줬다. 금리인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어도 O씨의 경우처럼 은행들이 적용하는 신용등급을 조정해 금리를 낮추는 방법이 있다. 은행들은 개인신상정보와 외부신용평가회사가 제공하는 신용등급, 은행과의 거래실적 등을 토대로 고객의 신용등급을 매긴다. 신상정보나 외부 평가기관의 등급은 바꾸기가 어렵지만 은행과의 거래실적을 양호하게 바꾸면 신용등급을 한층 높일 수 있다. 특히 상품 가입 등을 통해 지점장이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협상할 수 있다. 금리인하 요구권은 신용대출에만 적용되지만 이 방법이라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깎을 수 있다. 특히 앞으로는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적용할 때 신용등급이 높은 사람이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고객들은 본인의 협상력에 따라 대출금리를 낮출 뿐 아니라 대출한도까지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 고객들은 자칫 ‘위압적인’ 직원 때문에 기분 상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 때도 주눅들기 보다는 까칠한 태도로 상대 직원을 180도 바꿔놓을 수 있다. 평소 목소리가 나이보다 어리게 들리는 C씨는 K은행 대출창구에 중도금 관련 문의를 했다가 무성의하게 응대하는 직원 때문에 화가 치밀었던 경험이 있다. C씨는 차분한 음성으로 “이 은행은 인사고과에 고객 서비스 수준을 높은 비율로 반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가 지점장과 통화를 해야 겠느냐”고 반격했다. 그러자 직원은 곧바로 사과하고 C씨의 질문 사항에 상세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장학민 한국소비자보호원 금융보험팀장은 “금융산업은 오랜 세월 다져진 제도로 인해 일반적인 거래에서는 자신의 권익을 잘 찾던 소비자들이 부당한 대우에도 지레 겁먹고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조금이라도 부당하다고 여겨질 때는 적극적으로 부딪혀 보는 것이 바람직하며, 금융감독원이나 소비자보호원 등 제3의 기관을 활용하는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