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월가 전문가들이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입했다고 보는 것은 건설경기ㆍ소비ㆍ고용ㆍ물가 등의 경기지표들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6년간 이어져온 미국 역사상 최장 기간의 호황도 내년에는 종말을 고하고 지난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겪었던 끔찍한 스태그플레이션이 다시 도래할 것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경기하강은 늘 있는 일인데 너무 민감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 미 경제의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인상 행진을 멈춰야 할지, 물가억제를 위해 금리를 더 올려야 할지를 둘러싸고 뜨거운 설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 급속 냉각=미국의 경기둔화 우려는 4월 공장 수주가 줄어들고 5년여간 계속된 주택 열기가 식으면서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1일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가 발표한 5월 중 제조업지수는 54.4로 시장 예상치 55.8보다 낮게 나타났고 미 상무부가 발표한 4월 중 건설지출 역시 0.2% 증가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집고 오히려 0.1% 감소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기후퇴는 ‘우려’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미 노동부가 발표한 5월 고용지표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자 경기후퇴 ‘우려’가 ‘현실’로 바뀌었다. AP통신은 “비(非)농업 부문 신규 고용창출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무려 10만명이 적은 7만5,000명으로 지난해 10월 이후 최저 증가율을 보이면서 경기후퇴 우려가 증폭됐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주 골드만삭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인 헨리 폴슨을 차기 재무장관에 지명한 것도 경기 반전을 위한 ‘월가의 노하우’를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물가 지속 상승=미 경제가 급속 ‘냉각(cooling off)’하고 있지만 물가 상승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인플레이션 수준을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사용하는 4월 미 핵심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전년동기비 2.1% 상승했다. 이는 벤 버냉키 FRB 의장이 앞서 ‘마지노선’으로 정한 수준이다. 리먼브러더스의 미 경제담당 에탄 해리스 수석애널리스트는 “미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갈수록 완연해지고 있다”면서 “FRB가 이 때문에 고민하는 흔적이 지난달 10일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미 금리 추가 인상 논쟁=경기하강 속도를 늦추기 위해 금리인상 행진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소시에테제네랄의 스티븐 갤러허 애널리스트는 “경기둔화 조짐이 완연한 만큼 FRB가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이체방크도 최신 보고서에서 지금의 경기하강 국면이 하반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 FRB가 금리 추가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물가상승 위험성이 심각해 금리를 추가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인베스트먼트 어드바이저스의 린 리저 수석애널리스트는 “이달 말의 FOMC 회동 때 연방기금 금리를 ‘예방 차원’에서 또다시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지나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경계하고 있다. 무디스 이코노믹닷컴의 마크 잔디 수석애널리스트는 “통상적으로 경기가 가라앉을 때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도는 실제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미 경제가 내년에는 침체에 빠져들지 모른다는 점을 일각에서 우려하는 데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의 존 챌린저 대표는 “고용창출 둔화는 경기 약화보다는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강화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