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새 패러다임의 모색

국민의 정부가 이제 임기를 두달 남짓 남겨두고 있다. 내년 2월이면 새로 뽑힌 대통령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차제에 언론에서는 학계의 전문가를 동원해 차기 정부의 국가과제(national agenda)를 제시하고 있다. 대선후보들도 각 부문별 선거공약을 내세워 다른 후보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대선후보들과 참모진들의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그림에서는 후보들의 우열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물론 각론에서 차별되는 부문은 여기저기 보인다. 그러나 총론은 대동소이하다. 대선주자들의 정책 차별성이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는 것은 새 정부가 이끌어갈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데서 비롯되지 않나 생각된다. 미국과 유럽의 정책노선을 크게 구별해 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로 설명할 수 있다. 두 가지 정책 패러다임은 현실적인 정책 아젠다의 측면에서 볼 때 공통적인 부분도 적지않다. 하지만 그 뿌리와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분명히 차별화된 정책노선이 제시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에 의해 이념적으로 발전돼 영국의 대처 정부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 이후 미국 경제정책의 근간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30년대 경제대공황으로 인해 고전파경제학의 자유방임주의가 실추되면서 정부의 역할이 강조된 케인스경제학의 '폴리시 액티비즘(policy activism)'이 대두한다. 그러나 대공황을 극복한 후 미국경제가 제1의 황금기인 60년대를 거치면서 프리드먼 교수를 주축으로 한 신고전학파의 경제학자들은 신자유주의를 주창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큰 시장, 열린 시장을 지향하는 세계화, 경제적 자유의 신장을 위한 탈규제와 민영화 그리고 경쟁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유경쟁시장의 확보를 위한 시장경제의 자생적 질서를 존중하고 있다. 유럽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사회복지가 강조된 사회적 시장경제의 정책노선을 걸어왔으나 과다한 재정부담과 노동조합의 단체교섭력이 강화되면서 초래된 무질서는 '영국병' 으로 대변되는 장기적인 고실업률과 경기침체를 가져왔다. 이러한 병폐를 치유하기 위한 '제3의 길'은 바로 사회적 자본주의와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정책노선을 같은 부대 속에 넣어 만든 칵테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제3의 길'은 영국 기든스 교수가 말했듯이 중도좌파 혹은 중도우파라고도 볼 수 있다. '제 3의 길'은 세계화ㆍ탈규제ㆍ민영화를 지향하면서 사회복지와 평등ㆍ교육을 정부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결과적으로 20세기는 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이라는 두 가지 패러다임을 잉태했다. 그러나 이제 세계화ㆍ정보화ㆍBTㆍCT와 같은 새로운 '하이테크', 그리고 삶의 질과 인본주의가 강조되는 21세기를 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후쿠야마 교수는 최근 저서 '대붕괴 신질서'에서 신자유주의나 '제3의 길'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예고하면서 그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경쟁시장과 황금만능주의는 상상하기 힘든 범죄와 사회적 무질서, 증오로 가득찬 무자비한 테러 그리고 가정의 파괴와 친족관계의 붕괴를 야기시켰다. 세계는 이제 20세기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야기된 냉전시대보다 더 무서운 자유경쟁시장에서 파생된 대혼란과 사회질서의 붕괴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자본과 기술이 부를 축적하고 풍요로운 물질적 축복을 가져다 줬으나 세계는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자본, 즉 신뢰와 정의ㆍ인간애ㆍ정직성 그리고 공동체의식이 축적돼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의 무질서와 국가간의 대립이 새로운 의미에서의 '풍요 속의 빈곤'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시장이 주는 물질적 풍요를 약속하는 산업자본과 건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결합되는 인간적 시장경제(humane market economy)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본다. 국제연합(UN)이 95년 3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사회발전을 위한 UN 정상회의'의 후속작업으로서 97년 10월 '인간적 사회를 위한 인간적 시장'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세미나에서는 인간적 시장경제의 요지를 경제적 자유와 경제정의 그리고 경제적 도덕으로 제시했다. 이제 차기 정부를 이끌어갈 대선후보들도 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로 대변되는 구각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적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수용해 21세기에 걸맞은 참신한 정책개발에 진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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