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조세 피난처들 "아~ 옛날이여"

선진국들 탈세 막기 공조 강화<br>"세금 피해 도망갈 곳 없게 할 것" 각국 규제 나서<br>美 세수 年 수백억弗 손실…의회서 적극 조사<br>조세 피난처들도 제도 정비등 이미지 개선 추진




쪽빛 바다 물결이 넘실대는 카리브해의 케이먼 군도는 미국과 유럽 부호들의 휴양지다. 영국 자치령인 이 곳에 약 5,000개의 펀드와 400개의 은행, 4만개의 기업이 페이퍼컴퍼니를 설치해 놓고 있다. 일부 큰 손들은 이 곳에 트레이딩 룸을 설치해서 뉴욕주식시장과 국제외환시장에 직접 투자를 한다. 이 자그마한 섬에 각국에서 세금을 피해 건너온 금융기관과 기업이 대략 8,000억 달러의 자산을 쌓아두고 있다. 케이먼 군도는 주로 미국계 헤지펀드가 대량으로 적을 두고 있어, 국제적으로 조세피난처(tax haven)에 비난이 쏟아질 때 으레 타깃이 된다. 하지만 조세피난처에 대한 국제적인 조사와 규제, 국제기관의 간섭이 강화되는 추세다. 세계 각국의 금융감독기관들은 세금을 피해 도망갈 곳이 없게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달들어 케이먼 군도의 5층짜리 오피스빌딩 ‘어글랜드 하우스’에 미 의회 요청으로 미국 정부 관리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이 건물에서 벌어지는 암거래를 조사하기 위해 날아왔다. 케이먼 군도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엔론과 타이코의 회계 부정 스캔들이 이 곳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에서 시작됐다고 확인되면서 강화되고 있다. 막스 바커스 미 상원 재정위원장은 “케이먼 군도와 같은 조세 피난처에 거점을 둔 회사들이 탈세를 한다는 의심이 든다”며 “의회에서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케이먼 군도 뿐 아니라 전세계 조세피난처들이 선진국이 공조체제를 형성, 압력을 강화하는 바람에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조세 피난처에 설립되는 역외(off-shore) 회사의 상당수가 실체가 없는 서류상의 유령 회사다. 특히 카리브해 연안이나 지중해 연안의 군도에서 운영되는 역외회사는 불법 자금의 온상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세제 혜택을 받는 것은 물론 규제가 적고 금융거래의 익명성을 철저하게 보장해 검은 돈의 세탁에 악용되고 있다는 것. 미 의회가 적극 조사에 나선 것은 세수 손실이 막대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조세 피난처에 도피해 있는 자금은 약 11조5,000억 달러로 미 연방 예산의 4배가 넘는다. 미 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조세 피난처에 도망간 자금으로 연간 400억~700억 달러의 세수를 손해 보고 있다. 또 미 상원이 헤지펀드에 대한 탈세를 막기 위해 입법작업에 나선 것도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와 맥을 같이한다. 칼 레빈 상원의원은 지난 2월 ▦헤지펀드 돈 세탁 방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미국 특허청이 탈세와 돈 세탁을 조장하는 회계상 특허를 내주지 말도록 하는 내용의 헤지펀드 규제법안을 제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중심으로 조세 회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움직임도 강화되고 있다. OECD 이사회는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 99년 19개항의 유해조세경쟁 대책 조항을 채택하고 실무 조직으로 유해조세경쟁 포럼을 발족했다. 이 포럼은 2000년 공식적으로 35개 조세 피난처를 지정하고 이들 중 30곳에 대해 세금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현재는 라이베리아ㆍ마셜 군도ㆍ안도라 등 5곳만이 비협조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조세 피난처들이 말그대로 회사등록비와 세금을 물지 않기 때문에 세수에서 얻는 이익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곳에 등록한 페이퍼 컴퍼니들이 이용하는 금융기관을 통해 이익을 내고, 관광 수입을 덤으로 챙기고 있는 것이다. 미시간 대학 제임스 하인즈 교수에 따르면 지난 1982년부터 2003년까지 조세 회피지역 국가들의 국민 1인당 소득 증가율은 평균 2.8%로 같은 기간 전 세계 경제 성장률 1.2%를 두 배 이상 웃돌았다. 선진국들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조세 피난처들도 이미지 개선에 나서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조세 천국으로 불리며 탈세의 온상이 돼왔던 지역들이 금융제도를 정비하고, 미국 등 선진국과의 정보 교류를 통해 조세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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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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