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서임식에서 주교의 자주색 대신 추기경의 진홍색으로 예복을 갖춰 입은 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12번째로 호명돼 주케토와 비레타를 수여받았다.
동그랗고 납작한 주케토는 수도사들이 햇빛과 추위를 막기 위해 쓰던 모자에서 유래했고, 비레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를 상징하는 세 개의 각이 있는 예식 모자다. 염 추기경은 로마시내 트레스테베레 지역에 위치한 성 크리솔로고 성당(San Crisogono)을 명의 본당으로 지정받고, 이 성당의 명의 사제로 임명됐다.
교황은 추기경 한 명 한명을 호명해 포옹을 나누며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 전파에 헌신해달라는 표지로 추기경 반지도 수여했다. 이날 서임식은 새 추기경 대표의 감사인사와 신앙 고백, 교회에 대한 충성서약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교황은 라틴어로 "추기경을 나타내는 진홍색은 추기경의 존엄성을 나타내는 표지"라며 "이는 자신을 용맹하게 그리스도교 신앙과 평화, 하느님의 백성, 가톨릭 교회의 자유와 복음 선포를 위해 헌신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은 우리에게 기쁨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걷는 걸은 십자가 고통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처럼 교회도 여러분의 협력, 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폭력과 전쟁으로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서 주님의 은총을 청합시다"라고 덧붙였다.
염 추기경 외에도 교황청 국무장관인 피에트로 파롤린 대주교와 신앙교리성 장관인 게르하르트 루드비히 뮐러 대주교 등 영국, 캐나다, 니카라과, 코트디부아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필리핀, 아이티 등 15개국 19명이 추기경으로 공식 취임했다.
이날 서임식이 열린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고위 성직자들과 외교 사절, 일반 순례객 수천 명이 참석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인 성 베드로 대성당은 넓이 약 40만㎡으로, 축구장 6개를 합친 것보다 큰 규모다. 또 동서 221m, 남북 150m의 크기로, 한번에 2만5,000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다.
염 추기경은 대주교였던 지난 2002년 팔리움(교황이나 대주교가 제의 위 목과 어깨에 두르는 양털 띠)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바 있다. 성당 지하에는 사도 베드로의 무덤을 중심으로 역대 교황들의 묘소가 있다.
서임식 이후 염 추기경은 다른 신임 추기경들과 함께 오후 1시께부터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사제, 신자들과 인사 시간을 갖고 이후 전세계 취재진들과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어 오후 5시께에는 교황궁에서 함께 축하예방을 받았다. 염 추기경은 26일 로마에서 출발, 27일 오후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염수정 추기경은 앞서 20~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에서 주재한 추기경 회의에 참여해 한국의 남북 이산가족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염 추기경은 이 자리에서 '가정의 복음화'에 대한 방안을 발표하며 이어 교황에게 "현재 한국에서는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분단된 한반도에서 남과 북으로 흩어져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족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이산가족들과 이번에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나게 된 상봉자들을 위해 교황님께서 기도해주시고 강복해주시길 청한다"고 말했다.
또 교황은 같은 기간 추기경들과의 비공개 토론 인사말에서 이혼과 재혼, 피임, 동성 관계 등 현대 가족의 삶을 다루는 데 있어서 현명하고 담대하게, 충만한 사랑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