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불법 백화점' 자산운용사 대규모 징계 예고

차명계좌 매매… 채권 파킹거래… 일임재산 일반펀드부서 운용…

금감원 미스터리쇼핑 결과

투자위험 등 설명 안하는 불완전판매 행위도 만연


최근 펀드에 가입하러 간 A씨는 흑백으로 프린트된 투자설명서를 받았다. 펀드판매사 직원은 컬러 프린트 비용 때문에 투자설명서를 흑백으로 가져왔다는 말을 하고 펀드 가입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펀드를 판매하는 직원이 빨간색 글씨로 쓰인 투자위험내용을 A씨에게 숨기기 위한 꼼수였다.

펀드를 판매하는 펀드판매사(증권·은행·보험사)와 운용하는 자산운용사가 조직적인 위법행위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미스터리 쇼핑(암행감찰)과 메신저 조사 등을 통해 자산운용사와 펀드판매사의 불법행위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대대적인 징계를 내릴 방침이다.


금감원은 5월26일부터 6월25일까지 한 달간 미래에셋·KB·한화·대신·브레인·이스트스프링·교보악사 등 7개 자산운용사와 증권·은행·보험사 30개, 181개 점포를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해 관행화된 위법행위를 적발했다고 15일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들이 자본시장법상 불법인 채권 파킹거래를 관행적으로 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채권 파킹거래란 펀드매니저가 채권을 자신의 펀드에 담지 않고 구두로 채권 매수를 요청한 증권사에 잠시 보관(파킹)했다가 나중에 결제하는 것을 말한다. 자본시장법상 채권펀드에 편입할 채권 비율 등을 미리 정한 다음 채권을 매수해야 되지만 채권이 좋은 가격에 나오면 나중에 오를 것으로 보고 미리 사놓는 것이다. 운용사들은 ‘을’의 위치에 있는 증권사 브로커에게 ‘갑’ 행세를 하며 채권 파킹을 강요한 것으로 금감원은 파악했다.

또 자산운용사 전체 운용자산(654조원)의 47%에 달하는 투자일임재산(300조원)을 운용할 별도 운용부서가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운용사들은 이 자금을 일반 펀드운용부서에서 운용하고 있었다. 개인이나 기관은 보통 일대일 계약을 하고 자산을 운용사에 맡겼지만 운용사는 운용수수료만 받고 일반 펀드와 함께 운용한 것이다. 자본시장법 98조에 따르면 투자일임재산은 펀드와 집합해 운용할 수 없다.


운용사 임직원들은 일명 ‘못지’라고 불리는 차명 거래도 일삼았다. 자본시장법에는 금융투자회사 임직원은 계좌를 회사에 신고하고 매매내역을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운용사의 다수의 임원과 일반 직원들은 미신고계좌나 차명계좌를 이용해 펀드에 편입되는 종목들을 미리 담는 방법인 ‘선행매매’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운용사 직원들이 미공개정보이용거래를 관행처럼 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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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운용사들은 개인투자자에게 기관투자가보다 최대 6배에 달하는 운용보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운용사들은 개인에게는 60bp(1bp=0.01%포인트)를 받고 기관에는 20bp, 계열사에는 10bp를 운용보수로 받아왔다. 자본시장법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투자자를 차별하지 못하게 돼 있다.

펀드판매사들의 불완전판매도 만연했다. 투자위험등급의 펀드를 판매하면서 투자위험 등도 설명하지 않았고 판매보수가 높은 특정펀드를 권유하며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한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전체 피해 인원만 4만여명, 피해금액이 1조5,800억원에 달하는 동양사태가 터진 후에도 불완전 판매 관행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금감원 검사에 따라 앞으로 자산운용사와 펀드매니저·펀드판매사들이 대대적인 징계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운용사의 펀드매니저들은 미공개정보이용 거래혐의로 자본시장법에 따라 수익금의 1~3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금감원은 펀드매니저들이 많이 쓰는 ‘야후’메신저 대화 내역 조사를 통해 미공개정보이용 거래의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펀드판매사와 펀드판매직원들도 무더기로 과태료를 부과받을 예정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투자설명서 교부의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금투협 표준투자권유준칙을 어기면 자본시장법 50조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매긴다.

금감원은 운용사와 펀드판매사와 관련 직원들의 소명을 받은 후 제재 수위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박영준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자산운용사들과 펀드판매사들이 위법행위를 관행처럼 하고 있었다”며 “절차를 거쳐 제재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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