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김진표, 경제논리마저 잊었나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빛바랜 기자수첩이 쌓여 있기에 몇 개를 들춰봤다. 노무현 정부 초대 경제 사령탑을 맡았던 김진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의 발언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2003년 8월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 세수 형편을 볼 때 법인세를 바로 낮춰 내년부터 적용하기는 어렵다. 대신 임시투자 세액공제와 중소기업 최저한세율 인하 등 다른 방안을 모색하겠다" 그해 2월 참여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로 발탁되자마자 자신이 취임 일성으로 내건 법인세 인하를 슬며시 꼬리를 내린 것이다. 결국 법인세 인하는 가을 정기국회를 즈음해 없었던 일이 돼버렸다. 꼬리 내린 법인세 인하 법인세 인하는 참여정부 출범 첫 해 뜨거운 쟁점이었다. 취임하자마자 "법인세를 싱가포르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김 부총리의 감세론을 청와대가 곱게 볼 리 만무했다. 김 부총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청와대 386 참모진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법인세 인하를 낮추면 대기업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청와대의 논리에 재경부 세제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안절부절못했다. 정통 경제관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제 통이다. 경제 정책을 지나치게 세제에 맞춰 조율한다고 해서 '세리 장관'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지만 세제 하나만큼은 똑소리가 나게 해냈다. 그의 법인세 인하 발언에 과천 관가는 세제실장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들먹여온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평범한 조세원칙을 경제 수장이 돼 드디어 적용하려나 보다 여겼다. 한데 그의 지론은 너무 싶게 무너졌다. 코드를 모르는 순진한 장관이어서 딱하기도 했지만 또 한 명의 영혼 없는 공직자에게 쓴 웃음을 짓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8년 지난 지금도 법인세 인하 논쟁은 진행형이다. 법인세 인하는 한나라당의 감세 철회에 잦아들기는 했으나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해묵은 과제다. 김 원내대표는 한나라당마저 감세 철회에 따라오게 했으니 득의양양하겠지만 부총리시절과 달리 감세에 반대한 것을 두고는 뒷말이 나온다. 세계적인 재정 위기가 부각된 현 시점에서 세수감소를 초래하는 감세는 어렵다고 치더라도 예금보장 한도를 넘어서는 피해액까지 보장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데는 어이가 없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달 말 부산을 방문해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명박 정부의 금융감독 정책 실패에서 비롯됐기에 예금전액과 후순위 채권까지 보장해줘야 한다"고 외쳤다. 어찌 작금의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현정부만의 책임인가. 과거 정부는 금고에 은행 간판을 달아주고 대출 규제를 확 풀어줬다. 누적된 부실이 부동산 버블 붕괴로 한꺼번에 터진 것이 아닌가. 한솥밥을 먹던 후배 공무원 사이에서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투사가 아니지 않는가 김진표 원내대표의 경력은 화려하다. 공무원들은 한 번 하기도 어렵다는 장관을 두 번씩이나 했다. 그것도 장관보다 한 단계 높다. 경제와 교육부총리를 차례로 맡았다. 청와대에 떠밀려 17대 총선에 출마한 그는 탄핵 열풍을 타고 금 빼지를 다는 천운이 따랐다. 경기지사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을 뿐 정치인으로도 승승장구해 2선 의원에 원내대표 자리까지 꿰찼다. 김 원내대표는 머리띠를 두르고 장외로 뛰쳐나갈 투사형 정치인은 아니다. 온건과 합리성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관료시절이야 통치권자 코드 맞추느라 영혼이 없었다지만 성공한 정치인으로 변신하고도 경제원리마저 내팽개친 모습을 보노라면 헛웃음이 나온다. 아무리 표심 우선이라지만 정치인 김진표에게 포퓰리즘은 어울리지 않는다. 참여정부가 두 번씩이나 부총리 자리를 줬다고 해서 야당 원내 사령탑이라고 해서 좌 클릭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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