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 외근조정, 임시공휴일 요구도월드컵 첫승으로 한국팀의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사흘 앞으로 다가온 미국전을 보기 위해 직장인들이 무더기 월차휴가.병가를 내거나 외근일정을 조정하는 등 묘책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전이 폴란드.포르투갈전과는 달리 한창 일할 시간대인 한낮(오후 3시30분)에 열리는데다 미국의 포르투갈 제압이라는 이변으로 이날 경기가 한국팀의 16강 진출에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 회사에서는 아예 공식적으로 회의실 등을 이용해 집단으로 TV를시청하거나 오전 근무만 한뒤 길거리 응원 등을 하기로 했으며, 미국전이 열리는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빗발치고 있다.
◆ 직장내 휴가.외근 `열풍'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정모(34)씨는 7일 "사실상우리의 16강 진출 여부를 결정짓는 미국전이 열리는 날 회사가 정상근무지침을 내리는 바람에 오전만 근무하는 `반차'를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월차 휴가를 내기로 했다는 회사원 문모(25.여)씨는 "미국전날 월차를 내겠다는동료들이 많다"며 "어차피 회사에 있어도 집중이 안돼 정상근무는 어려울 것"이라고사무실 분위기를 전했다.
휴가가 눈치 보이는 직장인들은 외근일정이나 점심시간을 조정하고 있다.
모 신용카드사 이모(32)씨는 "직원중 20%가 외근일정을 미국전날 오후로 조정하고 있고, 상사들도 조정이유를 아는 눈치지만 묵인하는 분위기"라며 "점심시간에 일하고 경기시간에 점심과 함께 중계방송을 보려는 동료들도 많다"며 귀띔했다.
`꾀병을 앓겠다'는 `기막힌 직장인들'까지 생겨나 S연예기획사 서모(29)씨는 "회사에는 미안하지만 당일 아침에 아프다고 회사에 안나갈 것"이라며 한미전 열풍을실감케했다.
◆ 단체시청, 오전근무 업체 속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아예 공식적으로 동료들이 함께 TV를 시청키로 하거나 공식적으로 오전근무만 하기로 한 회사도 늘고 있다.
벤처기업 R사 최혁준(22)씨는 "그 시간대 누가 일을 할 수 있겠냐"며 인근식당에서 동료들과 점심을 들며 관전키로 했으며, BMW코리아 조은상(25)씨도 "팀원끼리회의실에서 중계방송을 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여직원 30여명이 집단으로 미국전 당일 월차휴가를 내겠다고 밝히자, 미국전이 열리는 시간에 업무를 중단한 채 아예 회의실에 대형TV를 보며단체응원을 하기로 했다.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포털사이트 업체 야후코리아는 10일 오전에 근무를 마치고 160명 전직원이 인근 맥주집에 대형 TV를 설치하고 `붉은 악마' T셔츠를 입고 단체응원을 한다.
라이코스코리아, 네트워크 장비업체 한국알카텔과 레저스포츠 전문업체 넥스프리, 온라인 채용정보 업체 G2잡, 르노삼성자동차, 어학콘텐츠 제공업체 YBM시사닷컴등 상당수 업체들이 미국전 당일 오전근무만 할 방침이다.
◆ 공무원 TV시청 난감
일반 직장인과 달리 공무원들은 일손을 함부로 놓을 수없는 처지라 속이 타는 처지다.
노동부의 한 공무원은 "미국전을 보고는 싶지만 근무시간에다 공무원이라 입장이 좀 난감하다"며 "두고 보자"며 말을 아꼈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민원을 상대하는 공무원이라 일손을 놓을 수는 없다"면서도 "행자부에서 지침을 내려주겠지만 민원업무에 차질만 없으면 우리도 동참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내심 사무실내 TV시청을 바라는 눈치다.
행자부 복무과 관계자는 "공무원들도 한미전을 시청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있지만 특별한 지침은 없다"며 "국가 업무를 잠시라도 중단할 수는 없지만 국민의 관심이 최대한 쏠려있는 만큼 기관장 결정에 따라 TV시청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단축수업, '보너스' 학점까지
응원을 위해 일부 휴교하는 학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단축 수업하거나 시험을 연기하고 교실 등에서 단체로 TV를 시청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경신고는 오전수업만 하기로 했고 동성고도 5교시 수업이 끝나는 오후 1시30분에 학생들을 모두 귀가시키기로 했다.
서울 K대 심영구(24)씨는 "교수님이 미국전 다음날로 기말고사를 연기했다"면서당일 `공부보다 길거리응원'을 다짐했다.
대학가의 월드컵 열풍은 '월드컵 보너스' 학점 제공이라는 기현상까지 낳아 서울 D대의 한 교수는 "16강 진출여부를 맞추는 학생에게 기말시험에서 2점 가산점을준다"고 공표했다.
또한 Y대 지방캠퍼스의 한 교수는 월드컵 16강 기원을 위해 이번 학기에 F학점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 네티즌 '임시휴일' 요구
청와대와 행정자치부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네티즌들의 `반(半)공휴일', `임시휴일' 요구도 잇따르고 있다.
`애국자'라는 ID의 네티즌은 "16강 진출을 위해 더없이 중요한 미국전의 승리는국민의 응원이 있을때만 가능하다"며 "미국전이 열리는 날을 반공휴일로 선포하라"고 청와대 게시판에서 글을 띄웠다.
`임두형'이라는 네티즌은 행자부 게시판에 "미국전 응원을 위해 임시휴일로 지정하라"고 요구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