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연쇄부도→금융집단 부실 주인/「복합불황」 제기 배경 뭔가

◎담보물 등 대규모 부동산 매물화/주가 등 「거품」 적어 다소 회의적우리 경제도 「복합불황」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는가. 최근 금융권 일각에서 부동산 가격의 폭락 가능성, 주식시장의 장기침체, 연이은 대형부도에 따른 금융부실 급증 등 심상찮은 금융권의 기류를 들어 한국판 「복합불황」이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복합불황」은 다분히 일본산 경제용어여서 그 개념을 정의하는 것부터 논란의 소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체로 부동산·주식 가격 하락에 따른 「버블」붕괴가 금융기관의 집단 부실화로 이어지면서 실물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현상으로 요약된다. 이런 개념정의를 엄격히 적용할 때 우리나라에서 과거 일본에서와 같은 복합불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부동산의 경우 일본에 비해 버블 정도가 심하지 않으며 여러 여건상 부동산가격 폭락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가도 이미 지난 80년대말 이후 지속적인 침체국면이어서 국내 주식가격은 오히려 저평가돼 있다는 반론이다. 그럼에도 우리 경제가 복합불황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는 최근 국내 경기와 금융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데 있다. 일본식 복합불황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실물경제 침체기에 금융 부실화에 따른 불황이 가세하는 한국판 「복합불황」이 발생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는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최근 신한종합연구소는 일본의 복합불황 과정을 다룬 「부동산신화의 붕괴」보고서에서 『한국 기업은 지나친 금융차입 경영으로 기업도산을 유발함으로써 부동산가격 폭락과 연쇄적인 금융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료는 『한국에서는 과잉생산 능력 및 기업의 높은 부채비율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대기업의 도산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같은 구조적 문제가 지속된다면 한국도 일본 같은 자산디플레이션 현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홍콩의 페레그린 증권사는 지난달 내부분석자료를 통해 『대형도산 등으로 위기에 몰린 한국에서는 자산디플레이션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면서 『일부 주요도시에서 부동산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이 벌써 70% 정도 감소, 부동산가격의 폭락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의 부동산가격 폭락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는 물론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같은 시각은 최근 대형부도에 이은 한국 금융시스템의 교란 위기를 국내전문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가격이 과연 폭락할 것인지에 대해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대체로 회의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자구책으로 보유 부동산을 대거 처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이들 대형부도에 연루된 금융기관들도 보유 자회사나 부동산을 매각할 태세를 보이고 있어 상황의 급속한 악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대형부도에 이은 금융기관의 「몸사리기」로 중소기업 연쇄부도 사태가 이어지면서 금융기관이 담보로 잡은 부동산을 매물화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져 부동산시장의 공급과잉 현상은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다. 현재 금융권 일각에서는 부동산 가격 폭락사태에 대비,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담보대출의 경우 대출금보다 훨씬 많은 감정가치를 담보로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담보가치의 하락 가능성에 대비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특히 우려되는 사실은 만약 부동산가격의 하락조짐이 가시화될 경우 90년대초 이후 일본이 겪고 있는 금융시스템 교란과 같은 파급효과가 일시에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결국 부동산가격 하락과 금융시스템 위기로 이어지는 소위 한국판 「복합불황」이 현실화할 경우 우리 경제를 일거에 파국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당국은 이에 대해 면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판 복합불황… 전문가 의견 ◎가능성 크지만 일본과 상황 달라/발생한다면 「개방」요인 더 클듯/최공필 금융연 전문의원 복합불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하락이 복합불황의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치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가격은 수년째 안정세를 유지해왔다. 성장률이 5% 아래로 내려서지 않는 한 급격히 내리막길로 들어서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붕괴 과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본은 80년대초 금융개혁으로 대기업들의 대출이 급증했고 이 자금이 부동산 쪽으로 흡수되면서 버블이 형성됐다. 당시 기업의 막대한 대출금이 버블 붕괴와 함께 부담으로 다가왔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 기업의 대출규모는 일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세계경기도 호조를 이어가 기업의 해외수요 증가에 낙관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 복합불황이 일어난다면 오히려 「개방」에 의한 요인이 클 것이다. 과거 한국경제는 경기가 나빠져도 해외수요가 조금만 받쳐주면 되살아나곤 했다. 하지만 개방시대의 경제는 다르다. 개방이 진행될 경우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금융과 노동부문의 기능 약화는 불가피하다. 경기회복을 위한 두가지 버팀목인 두 부문이 기능을 잃을 경우 경기침체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들이 가뜩이나 몸을 사리고 있는 시점에서 개방이 가속화될 경우 불황의 골은 더욱 깊어질 소지가 있다. 복합불황을 막으려면 바로 금융과 노동부문의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 ◎현 불황 수출부진 따른 일시현상/부도문제 일부기업 방만경영 탓/정문건 삼성경제연 상무 현재의 한국경제를 아직 복합불황의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 이번 불황은 반도체 등 주요 수출품목의 가격하락과 엔저에 의한 일시적 불황으로 보는게 옳다. 수출품목의 가격이 소폭 반등하고 있는 중이고 하반기부터는 엔저가 시정될 것으로 보여 최악의 경기불황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부도문제도 전체 산업의 불황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일부 기업의 방만한 경영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부동산가격 하락에 따라 복합불황이 도래할 것이라는 견해도 현 시점에서는 걸맞지 않다. 일부 의견처럼 일본의 경우와 대비시키는 것도 다소 무리다. 일본의 부동산버블은 무역흑자 확대에 따라 개인과 기업의 여유자금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수년째 무역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거품을 만들 바람(자금잉여)이 없는 셈이다. 부동산실명제 이후 땅값이 안정세를 유지해왔다. 기업들도 개방시대를 맞아 질 위주의 경영으로 전환함에 따라 토지수요를 줄여나갈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국경제의 체질강화에 필수적인 요소는 금융부문의 경쟁력 회복이다. 한국의 금융산업이 낙후된 것은 금융을 개발정책의 보조물로 여겨온 정부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문제는 이제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도산에 이르지 않고 연착륙할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정부 의지에 달렸다. 금융기관도 개방시대에 맞는 경영체질을 기르는게 시급하다.<김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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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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