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깎으라는 예산, 純增시킨 국회

국회 예산결산위는 29일 소위를 열어 정부 원안보다 8,000억원을 순증한 118조3,000억원의 새해 예산안을 확정했다. 물론 이 예산안은 30일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본회의 통과가 무산되면 재조정을 할 것이라고 하나 일단 골격은 갖춘 셈이다. 여야가 잠정 확정한 새해 예산안의 특징은 무엇보다 지난 75년 예산안을 300억원 증액한 이후 29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 심의과정에서 순증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국회도 나라살림을 위해 예산을 늘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 예산에서 불요불급한 예산을 깎아 국민의 세금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국회 본연의 임무다. 깎기는커녕 오히려 순증시켰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심의 내용을 보면 졸속에다 나눠먹기의 구태가 여전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증액분 가운데 1조원 가량의 재정적자는 국채발행을 통해 충당키로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대로 적자예산안을 편성한 것이다. 더욱이 당초 정부가 공적자금 상환을 연기해 일반회계에서 쓰기로했던 1조9,000억원을 내년에는 기금에서 갚기로 해 통합재정수지의 적자폭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새해 예산안의 증액 자체도 문제지만 조정 내역을 살펴보면 과연 여야가 제대로 심사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예결위는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한 뒤 발생한 FTA 비준에 따른 농어촌 지원예산 6,318억원과 이라크 추가파병 비용 2,000억원, 선거공영제 도입 예산 1,000억원 등이 국회 심의 중 순증을 유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삭감항목으로 재해대책 예비비 2,000억원과 일반 예비비 1,000억원 등을 포함시켰고, 사회간접자본(SOC)예산의 경우 2,149억원을 줄이고 3,397억원을 늘려 예결위원이나 지역구 의원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바꿔치기에 지나지 않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전형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 예산편성이다. 또한 교육예산 증액은 전국 국공립대학의 교육관 건축 등에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줄어들 입학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지역 선심성 예산일 가능성이 높다. 여야는 과거 6~7년 사이에 교육예산은 배로 늘었으나 교육의 질은 더 낮아졌다는 여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말로는 행정부를 견제한다면서 예산심의를 이처럼 소홀히 하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다. 참여정부의 분배 위주 예산안 편성에 더해 여야마저 버젓이 예산안 순증을 단행하고 추경예산 편성을 당연시한다면 성장잠재력은 더욱 줄어들고 재정수지와 국가채무는 갈수록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정구영기자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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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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