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25일] 새뮤얼 콜트

콜트. 19세기 후반 이후 전쟁터에 가장 많이 등장한 제품이다. 콜트사에서 찍어낸 총기류만 3,000만정. 묵직한 45구경 권총이며 M16 소총이 콜트사에서 나왔다. 콜트사의 창립자 새뮤얼 콜트(Samuel Colt)는 무기뿐 아니라 산업사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부품 규격화를 통한 호환성 확보, 작업 세분화, 제품 일련번호(시리얼넘버), 영업 전문 대리점 등을 처음 선보인 사람이 콜트다. 성공의 시발점은 1836년 2월25일의 특허 취득. 권총을 쏠 때마다 회전탄창을 손으로 돌려야 하는 불편함을 없앤 반자동식 리볼버 권총으로 특허를 따낸 22세의 외항선원 출신 청년은 바로 공장을 세웠다. 결과는 6년 만의 도산. 특허분쟁 탓이다. 1847년 특허 연장에 고무된 그는 다시 사업에 나섰다. 남의 공장을 빌렸지만 장인의 수작업에 의존하던 공정 세분화ㆍ자동화를 통해 품질을 높였다. 사업 영역도 넓혔다. 리모컨으로 조정되는 폭발장치를 개발, 대서양 해저 케이블 가설공사에 납품하고 마취제로 쓰이던 아산화질소를 ‘웃음 가스’로 팔아 돈을 벌었다. 주력인 총기 사업에서도 대박이 터졌다. 인디언 사냥과 멕시코 전쟁, 남북전쟁 덕분이다. 1851년에는 현대화 공정을 갖춘 최초의 사업장이라는 하트포트 공장을 세우고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런던에 지사를 개설했다. 남북전쟁 발발(1861년) 당시 그는 이미 미국의 10대 부호로 꼽혔다. 건강 악화로 1862년 47세로 사망한 그가 남긴 재산은 1,500만달러. 요즘 가치로 3억달러가 넘는 유산의 대부분은 총을 팔아 번 돈이다. 콜트사가 만든 총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신은 모든 인간을 창조했다. 콜트는 그들을 평등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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