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새판짜는 세계금융질서] <2>일·중·유럽이 뛴다

"100년만의 기회 왔다" 금융패권 경쟁 불붙어<br>일본 '잃어버린 10년' 뼈깎는 구조조정으로 힘 비축<br>AIG 계열사 인수전 참여등 발빠른 해외기업 사냥<br>영국 은 금융빅뱅 통해 각종 규제철폐로 자본 밀물<br>런던 금융거리 기업공개 부문서 월가 제치고 1위로

‘경쟁자의 위기에서 기회를 잡아라.’ 세계 금융시장을 호령하던 미국 월가가 금융위기로 흔들리자 글로벌 금융시장의 패권을 향한 ‘100년 만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일본ㆍ영국ㆍ중국이 분주하게 뛰고 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IB)을 잇따라 인수하는가 하면 글로벌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제도개선에 나서고 있다. 총성이 들리지 않는 금융전쟁에서는 ‘자금과 인력’이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황(戰況)이 좌우되는 법이다. IB와 헤지펀드를 앞세워 글로벌 금융시장을 정복했던 월가는 이들의 몰락과 함께 적어도 당분간은 힘을 쓰지 못할 공산이 크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재편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 월가가 차지했던 자리는 일본ㆍ유럽ㆍ중국 등 신흥 강호들을 향해 중심축을 조금씩 옮겨가는 모습이다. 월가의 금융위기 이후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일본. 일본은 거품경제가 절정이던 지난 1980년대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 월가의 부동산과 금융회사ㆍ영화사 등을 잇따라 사들이며 융단폭격을 가했다. 이후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인수했던 회사들을 잇따라 매각하며 철수했지만 최근 제2의 진주만 기습작전에 비견될 만큼 월가 금융기관을 공격적으로 사냥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본 은행들이 재기하고 있다”며 “일본에 다시 (제국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홀딩스는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ㆍ태평양 지역본부에 이어 유럽과 중동 지역 사업 부문까지 인수했다.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은 모건스탠리 지분 20%를 사들이는 계약을 맺었다. 일본 보험회사들은 미국 최대 보험회사인 AIG가 일본 내 계열 3사에 대한 매각을 추진함에 따라 치열한 인수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금융회사에는 거품붕괴의 후유증으로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것이 힘을 비축하는 계기가 됐다. 과거의 실패를 통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현금자산 위주로 경영체질을 개선한 덕분에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신용경색으로 글로벌 자금시장에 돈이 잘 돌지 않는 가운데 일본 금융회사들의 자금력은 그 어떤 무기보다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0.5%에 불과한 저금리로 언제든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일본 금융회사들의 자금력은 달러화에 대한 엔화 초강세로 그 힘이 더욱 배가됐다. 일본의 경기부진으로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더 높은 수익성을 올릴 수 있다는 금융회사들의 판단도 적극적인 해외진출 노력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금융회사들이 제2, 제3의 해외기업 인수를 지속적으로 시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이터통신은 “일본 금융회사들은 한때 IB들의 고위험ㆍ고수익 구조에 대해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풍부한 현금을 들고 공격적으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막강한 제조업에 강한 금융산업을 보태 세계경제의 리더로 군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이 개별 금융회사들의 인수합병(M&A)으로 두각을 나타나고 있다면 영국은 월가에 버금가는 금융시스템으로 세계 금융 패권을 노리고 있다. 영국 런던의 금융 거리인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 영국 경제의 심장부인 이곳에는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물론 런던증권거래소(LSE)와 로이드보험 등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몰려 있다. 역사와 전통에서 전세계 모든 도시의 원조라는 의미로 ‘더 시티(The City)’라고도 불린다. 더 시티는 지난해 세계 기업공개(IPO) 부문에서 뉴욕 월가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서는 등 미국의 금융위기를 틈타 다시 부상하고 있다. 국부펀드와 중동의 오일머니가 돈을 싸들고 찾아오면서 과거 수십년간 월가에 빼앗긴 자존심을 일부분이나마 되찾아온 것이다. 더 시티와 함께 제2의 금융 거리인 ‘카나리 워프(Canary Wharf)’도 영국이 금융제국의 영광을 되찾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영국이 금융의 원조 자리를 부문적으로나마 되찾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금융회사 간 장벽을 없앤 금융 빅뱅을 통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외국자본에 대해 금융거래의 편의성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감독기관을 금융감독청으로 단일화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면서 헤지펀드 등 뭉칫돈과 금융회사들이 대거 몰리기 시작했다. 영국 LSE는 국제증권시장의 45%를 점유할 정도로 외국자본에 가장 인기 있는 곳이 됐다. 런던금속거래소(LME)는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버금가는 상품거래소로 자리잡았다. 영국의 외환ㆍ채권ㆍ파생상품 거래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고든 브라운 정부 출범 이후에는 세계 금융의 또 다른 축인 이슬람 금융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최근 발표된 세계 글로벌 금융센터 순위에서 영국 런던은 1위, 일본 도쿄는 7위를 차지했다. 반면 미국 뉴욕은 2위를 차지했지만 금융기관의 붕괴가 잇따르고 금융서비스 전문인력이 줄어드는 등 핵심 금융센터로서의 신인도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종합점수가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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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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