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작은 정부-큰 시장' 밑그림부터 위협

■ MB정부 경제운용 로드맵 '흔들'<br>세계 각국 위기 타개위해 정부 개입·규제 확대<br>내년 시행 자통법·외환자유화 등 "시기상조" <br>여당의원도 "경제운용기조 전면수정" 불가피


과거 냉전체제 붕괴를 예견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최근 ‘뉴스위크지’ 기고문을 통해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언을 선언했다. 앞으로는 정부 규제강화와 공공기능 정상화에서 새 비전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주요 국가들은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시장규제와 정부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던 이명박 정부의 ‘큰 정부-작은 시장’이라는 밑그림 자체가 위협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기업 민영화, 경기부양 등 단기과제는 물론 규제완화와 감세라는 중장기 과제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커지고 있다. 최소한 금융시장 불안이 진정될 때까지 만이라도 MB노믹스의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 경제운용 기조 수정 압력=이 같은 압박은 시민단체와 노동계에 이어 정치권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현정부의 주요 정책들이 대기업과 부유층에 혜택이 집중되면서 양극화만 심화될 것이라는 국민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결산특위의 이한구(한나라당) 위원장은 13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미국발 금융위기 대응방안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급하지 않은 감세에 대한 속도조절론을 제기했다. 세수감소가 필연적인 정부 감세안을 재검토하는 한편 수비 위주로 경제를 운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종부세를 둘러싼 여당 내 혼선이 보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셈이다. 야당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이날 현 경제상황을 ‘미증유의 금융위기’로 규정하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내년도 예산안의 수정편성 등 경제정책의 전면수정을 주장했다. 그는 위기극복의 5가지 방안으로 ▦중소기업 최우선 지원 ▦경제각료 전면 교체와 부총리제 신설 ▦부자감세안 철회 및 부가세 인하 요구 수용 ▦내년 예산안 수정안 편성 ▦저소득 근로자 취약계층 지원 등을 제안했다. 대부분 이명박 정부의 경제운용 기조와 배치된다. 이처럼 야당은 물론 일부 한나라당 의원까지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수도권ㆍ금융 규제완화 등 주요 정책의 추진력도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감세 및 예산안이나 경기부양책은 서로 얽혀 있어 오는 11월 국회 심의과정에서도 패키지로 통과될 사안”이라며 “자칫 국회 통과가 내년까지 지연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단기ㆍ중장기 과제 모두 흔들린다=미국발 금융위기가 통제불능 사태로 치달으면서 이명박 정부의 단기 과제 중 상당 부분이 연기되거나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가 내년 2월부터 앞당겨 실시하기로 한 외환자유화 조치를 철회한 게 대표적이다. 달러화 한푼이라도 국내에 붙잡아둬야 하는 상황에서 외환시장의 빗장을 푸는 정책은 적절하지 못했음을 시인한 것이다.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 역시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정희 민노당 의원이 국내시장이 파생금융상품의 위험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자통법 시행을 1년 연기하는 법안을 제출하는 등 금융불안으로 자통법에 대한 반대기류도 거세지고 있다. 이밖에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 통합, 금융공기업이나 공적자금투입기관 민영화도 차질을 빚고 있다. 게다가 미국 금융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면서 ▦규제개혁 등을 통한 성장능력 확충 ▦작고 효율적인 실용정부 등 MB노믹스의 근본 경제운용 방향도 흔들리고 있다. 우선 우리 경제의 큰 틀이라고 할 수 있는 거시정책과 예산안 자체의 수정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 5.0%, 원ㆍ달러 환율 990원선을 바탕으로 예산안을 수립했지만 내년 성장률이 3%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또 민영화 일정의 차질이 불가피해지고 있는 마당에 감세에 따른 세입감소를 공기업 매각으로 메우겠다는 정부 방안은 애초부터 ‘재정 구멍’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정에서도 예산안 수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배국환 재정부 2차관은 지난 1일 “내년 예산안 편성의 막바지에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해 이 부분이 충분히 감안되지 않았다”고 시인한 뒤 국회 수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 경우 중장기 재정운용전략 수정도 불가피하다. 강만수 장관도 이미 7일 국감에서 “필요하면 적자를 늘려서라도 적정지출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내는 등 오는 2012년 균형재정 달성이라는 정부의 야심찬 포부는 한낱 ‘꿈’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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