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반기문 장관에게…天皇ㆍ日王ㆍ倭王

권홍우<경제부차장>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정말로 ‘천황’이라는 용어를 써야 하냐고. 일왕이냐 천황이냐의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다. 대통령도 판단을 유보했던 문제를 장관이 정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한일 두 나라의 우호를 위해서도 그렇다. 천황이라는 용어를 수용하려면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다. 일본인들이 아무리 ‘욘사마’에 환호하더라도 일본의 국가원수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는 천황보다는 차라리 왜왕에 가깝다. ‘천황’으로 호칭하는 게 맞다는 장관의 입장도 일면 수긍할 수 있다. 의전적, 외교적 수사라고도 생각된다. 문제는 국민감정은 차치하더라도 보편타당성의 원칙이다. 제정러시아와 고대 이집트, 중국왕조의 왕들을 차르와 파라오, 천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천황 역시 고유명사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관습으로 굳어진 다른 나라 왕의 명칭과 달리 천황은 인공조형물이다.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왕은 왜왕으로 통했다. 국제무대에서 왕으로 대우받지 못한 적도 많다.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명나라에 ‘일본국왕이자 폐하의 신(臣)인 요시미쓰는…’로 시작되는 국서를 올렸었다. 조선도 쇼군을 일본국왕으로 여겼다. 왕은 뒷전이었다. 쇼군이 600억원에 해당하는 거금을 들여 조선통신사를 환대할 때 왕은 사채를 얻을 정도로 궁핍하게 보낸 시절도 있다. 천황이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보편화한 것은 지난 1889년. 제국헌법을 마련할 때 ‘고테이(皇帝)’ ‘고쿠테이(國帝)’ 중에서 뽑혔다. 일부 무사들은 왕을 ‘교쿠(玉)’라고도 불렀다. 만들어진 것은 천황뿐 아니다. 일개 종파였던 신또(神道)가 국민적 이념으로 재포장돼 퍼졌다. 결과는 군국주의 일본, 침략과 압제였다. 그 한복판에 천황이 있다. 2차대전의 실질적 전범도 개인 히로히토가 아니라 ‘천황’이라는 정치적 상징조작이다. 미래를 위해 과거지사는 빨리 잊는 게 좋다. 그러나 상대가 반성했는지도 모른 채 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연 반성했을까. 독도와 종군위안부 관련 망언이 연일 이어진다. ‘일왕이 아니라 천황이다. 거기에,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이 외교적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고? 잘했다. 일본 외무대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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