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아사태가 주는 교훈/허고광 한은금융경제연구소장(시론)

진로, 대농그룹에 이어 세번째로 기아그룹이 지난 15일 부도방지협약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다. 1962년 자동차산업에 진입한 기아그룹은 총자산 15조6천억원의 재계8위로서 28개의 계열기업과 5만5천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이러한 외형적 성장의 이면에는 9조5천억원에 이르는 금융기관 부채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아사태의 원인은 기존의 기업부도와 공통점이 있지만 구별되는 점도 있어 앞으로의 기업경영과 산업정책에 또 하나의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우선 공통점으로는 국내외 과잉중복투자, 잦은 노사갈등, 내수시장 불황에다 자금시장에서의 악성루머 난무로 계열사가 심각한 자금난·경영난을 겪어 왔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부도 기업과는 달리 기아는 정부정책에 적극 부응해 온 것으로 여겨진다. 즉 기업소유를 분산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여 「국민의 기업」「종업원이 주인인 회사」로 불리기도 했다. 계열의 성격에 있어서는 선단식 경영을 하는 다른 재벌기업과는 달리 수직체제로 되어 있는 업종 전문화를 채택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기아에는 노조의 요구가 다른 계열에 비해 과도했다는 보도도 있다. 이와같은 기아의 특징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제시해 주고 있다. 첫째, 기업의 재무구조는 다른 여타 요인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산업의 특성상 독자적인 자동차기업으로서의 적정규모가 1백만대이상의 생산시설을 갖추어야 하는 제약때문에 투자확대가 불가피하였으나 이에 필요한 재원을 기술우위를 토대로 한 판매확대에서 나온 자금 대신 손쉬운 금융차입으로 보전해 왔다는 점이다. 이렇게 차입규모 및 비율이 높은 기업은 불황이라는 높은 파도를 만나면 재무구조가 건전한 기업보다 쉽게 난파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둘째, 기업 지배경영구조에 있어 시장규율을 철저히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즉 기업의 지배구조는 국민기업의 모범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지만 노사가 주인정신을 토대로 어려운 기업환경을 고려하여 시장메커니즘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데 서로의 노력이 부족하였던 것으로 평기되고 있다. 경영면에서는 전문경영체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규모에 걸맞은 기업이미지를 일반에 제대로 심어주지 못하였고 노조는 지나친 임금인상요구를 자제하지 못했다는 소리가 높다. 이러한 현상이 자연히 제품판매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셋째, 산업정책에 있어서 시장실패의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경제문제를 접근할 때 시장을 흔히 암묵적으로 완전경쟁시장으로 가정한다. 그래서 새로운 참여자의 시장진입문제나 시장실패의 가능성을 그다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자동차산업같은 경우는 성격상 시장참여자가 소수일 수밖에 없는 과점산업이므로 시장실패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이에따라 정부의 조정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산업분야에 대해서는 진입 및 퇴출면에서 투명한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넷째, 기업의 경쟁력은 어디까지나 기술개발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1980년초의 봉고차 명성이후 회사를 대표하고 타사제품보다 월등하다고 소비자들에게 인정받는 제품이 그동안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금융기관들도 대기업 프로젝트에 대한 대출결정을 함에 있어 보다 선진화된 심사를 하는 등 기업지도에 관한 업무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금융시장을 포함한 국민경제에 대한 충격과 외자조달 및 현지판매 등 해외시장에서의 나쁜 영향을 최소화하고 유사한 사태가 또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국민기업이 구조개선을 통해 스스로 다시 설 수 있도록 하는 사후적 처리다. 특히 5천여개의 부품업체가 겪을 어려움을 가능한 한 극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사가 일치단결하여 경영합리화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1978년에 크라이슬러가 도산의 위험에 처하였을 때 새로이 취임한 아이아코카 회장은 기업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대표상품을 개발하는 한편 자신은 기업이 정상화될 때까지 연봉을 받지않았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최근에 GM자동차가 품질이 개선되어 일본차와의 경쟁력을 회복하게 된 이면에는 노동자들이 근무자세를 쇄신하고 제품의 마무리를 철저히 한데서 기인한 면이 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약력 ▲연세대 경제학과졸 ▲필리핀 산토 토머스대학원 경제학 박사 ▲67년 한국은행 입행 ▲82년 아시아개발은행 근무 ▲한국은행 비서실장 국제부장 ▲한은 금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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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고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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