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경상수지 적자 비상] <하>불건전한 '적자 내용'

원자재값 상승·원화강세…서비스지출 증가 너무 커<br>수출 늘어도 원자재값 올라 수입액만 증가<br>서비스 적자가 상품수지 흑자마저 잠식<br>레저산업·의료서비스업등 경쟁력 강화해야


“경상수지 적자가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손해다.” 원론적으로만 따지면 경상수지 적자가 꼭 국가적 손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가계나 기업의 경제상황이 개선되면 소비가 늘면서 상품수입이 증가하고 기업 투자 활성화로 부품수입도 늘어 적자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지난 70ㆍ80년대 성장일변도의 한국경제도 해외서 자본재를 수입, 가공 후 파는 과정에서 수입액 증가로 적자를 기록한 반면, 성장이 둔화된 외환위기 이후 흑자전환기를 다시 맞기도 했다. 19세기 말 미국경제의 성장기에도 해외자본이 대거 상륙하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졌지만 이는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는 사례도 있다. 이 같은 점을 들어 일각에서는 향수와도 같은 ‘흑자국의 환상’이 적자발생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낳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 경제가 맞고 있는 경상수지 적자 우려 상황은 이 같은 원론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수가 활발해져 적자가 늘어났다기보다 ▦원자재 가격 상승 ▦원화강세 ▦서비스 지출 증가 등의 구조적 문제가 원인이라는 게 문제점이다. 한마디로 국내 소비, 투자 확대와는 거리가 먼 ‘불건전한 경상수지 적자구조’가 한국경제가 처한 현실이다. ◇수출도 괜찮은데 자재 수입액만 늘어=우선 상품수지만 보면 자동차 파업 등의 악재를 겪은 7월에도 수출 성적표는 기대 이상이었다. 전년 동월에 비해 20억달러 이상 늘어난 것. 문제는 수입이다. 수입액이 30억~40억달러씩 급증하다 보니 수출이 늘어도 상품수지 흑자규모가 10억~20억달러씩 감소했다. 박종열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국제수지팀 차장은 “전체 상품수입액에서 원자재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1년 당시에는 49~51%였지만 올해 들어 56%까지 높아졌다”며 “그러나 수입물량 자체는 큰 변동이 없어 결국 원자재 가격상승이 수입액만 늘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내수가 활성화되면서 기업들이 원자재를 더 들여온 게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경상수지 흑자폭이 서서히 줄어드는 올 상반기 들어 국내 소비ㆍ투자는 기대할 만한 활황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올 상반기 소비재판매지수는 110~126 수준(2000년=100)에 그쳤고 설비투자도 추계지수가 96~120 수준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크게 늘어나지 못했다. 결국 기업이나 소비자들이 국내에서 돈을 더 쓰지도 못했는데 자재구입비만 올라 적자만 늘어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원자재뿐만 아니라 부품소재마저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구조와도 밀접하게 닿아 있다. 2000년 산업연관표를 기준으로 우리 경제의 수출의 수입유발계수는 36.7%에 달한다. 이는 100달러를 수출하면서 유발되는 수입액이 36.7달러에 이른다는 의미로 자체적으로 부품소재를 생산하는 일본의 세 배를 넘는 수준이다. ◇원화 값 좋을 때 한푼이라도 더 쓰자=서비스 수지 악화는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잡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서 여행ㆍ유학ㆍ연수로 쓰는 여행수지 등의 적자규모가 우리나라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0.9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중 5번째로 큰 수준이다. 서비스 수지의 확대는 간신히 이어져온 상품수지 흑자마저 매년 야금야금 침식하고 있다. 한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상품수지를 서비스 수지 적자로 나눈 비율은 2000년 –16.9%(상품수지 흑자 168.5억달러, 서비스수지 적자 –28.5억달러)에 불과했지만 ▦2002년 –55.5%(147.8, -82.0) ▦2004년 –21.4%(375.7, -80.5) ▦2005년 –39.1%(334.7, -130.9)로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이 같은 서비스 수지 적자는 경제규모 확대에 따른 해외소비 증가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최근 몇 년간 동아시아권에서 유달리 강세를 보인 원화가치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무역흑자로 달러가 넘칠 때 이를 미리 해외로 내보냈다면 지금의 원화강세가 좀 약화돼 무역적자 개선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내국인이 해외 교포 등에게 보낸 송금액을 의미하는 경상이전수지의 경우 원ㆍ달러 환율이 1,100원, 1,000원, 950원선 아래로 내려올 때마다 널뛰기 증가세를 보였다. 원화가치가 높으면 같은 돈이라도 더 많은 달러를 보낼 수 있다는 이유로 송금액이 늘어난 탓이다. ◇한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고민거리=우리 경제가 처한 경상수지 적자 구조는 외수는커녕 내수에도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 채 빚만 늘리는 상황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통일비용과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정책, 지역균형 발전 등에 막대한 재정부담이 불가피한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하면 경상수지에서도 건전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과 같이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쌍둥이 적자방식을 사용할 만한 구조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도 이 같은 적자구조의 만성화를 막기 위해서는 미뤄둔 산업구조 개편을 더 이상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진단이 많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서비스 수지가 상품수지를 잠식하는 현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레저산업, 의료서비스 경쟁력 확대라는 보약밖에는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제는 값 오르는 원자재, 부품소재를 비싼 돈 주고 사들인 후 반도체ㆍ영상장비ㆍ자동차 등 일부 품목에만 한정된 수출품에 주력해온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체질을 보다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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