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채권시장 개설은 아시아 금융백년대계로 불릴만한 원대한 구상이다. 계획이 성공하면 아시안 전체가 금융위기에 공동대응하고 역내 발전을 위한 확고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무엇보다 넘치는 달러를 역내에 투자해 공동이익을 얻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역내자금은 역내에 투자=아시아국가들이 해외에서 운용하는 자산규모는 줄잡아 1조달러. 일본과 중국, 홍콩, 한국, 싱가포르 등 5개국가가 보유한 미국재무성채권(TB)만 6,000억달러다. 아시아 국가들의 해외자산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수출초과로 쌓인 무역수지흑자를 달러화ㆍ유로화표시 채권매입에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위기후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그런데 막상 아시안 역내에 투자되는 자금은 매우 적다. 2000년 현재 일본의 해외채권투자액은 143조4,000억엔이다. 이 가운데 유럽비중이 42.3%로 가장 높고 미국이 34.5%다. 아시아 투자비중은 고작 2%다. 발전의 원동력이 돼야 할 축적된 자본의 힘이 정작 자본이 절실한 역내에는 배분되지 않고 역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역내 채권시장 2년내 개설=아직은 초기단계다. 홍영만 재경부 금융협력과장은 “아직은 구상과 의견교환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채권시장개설이 처음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0월. 아세안+3 재무장관 회담에서 한국이 정식으로 제안했고, 태국 탁신차니왓총리도 비슷한 시기에 유로본드와 비슷한 아시안본드의 발행을 제창했다. 이후 한국이 작년 12월경 제안서를 냈고, 일본이 1월말에 수정제안을 했다. 돌다리도 두드려가기로 유명한 일본 대장성이 불과 1개월만에 수정제안을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일본은 오는 28일 도쿄회의를 열자는 수정안까지 제시했다.
한국이 낸 제안서의 핵심은 채권발행을 활성화하기 위해 역내 보증기관을 설립해 바로 아시아채권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일단 개별국가들의 국내 채권시장을 먼저 키울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어느 쪽이든 개별국가들의 시장구조를 아시안 통일모델에 접근시키자는 데는 이견이 없다. 때문에 이번 도쿄회의에서 정해질 방향과 관계없이 아시안국가들의 채권시장은 이른 시일안에 `통일규격`을 갖게 될 전망이다.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도 적극적이다. 기본적으로 중국기업의 자금수요가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태국과 홍콩도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다. 박재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13개 국가의 이해조정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의외로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며 “당초 예상했던 2년보다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시장개설 기대효과=크게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역내 균형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발전이 뒤진 미얀마와 베트남 등 `Poor 5 아세안`에 한국이나 일본기업이 투자하면서 현지 채권발행이 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 물론 정교한 보증시스템 등이 필요하겠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에 나가 채권을 발행해 돈을 조달하는 것보다 금리도 낮아지고 국내투자자들도 새로운 투자대상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른바 윈ㆍ윈(winㆍwin)전략이다. 두번째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아시아지역의 채권시장이 발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시안채권시장이 안정적인 발전가능성이 높은 채권시장으로 확인될 경우 더욱 많은 투자수요를 일으키고, 투자→발전→자본축적→투자증가→발전가속 이라는 선순환구도에 오를 수 있다. 세번째는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을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역내 금융협력강화는 언제든지 역내자금이 효율적으로 동원될 수 있는 길을 보다 쉽게 터주고 해외투기자본의 금융투기를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공동채권시장 개설이 부분적이나마 시장통합의 효과를 갖게 되고, 유럽연합 같은 역내 통합을 앞당기는 촉매제로도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홍우기자 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