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하는 거죠.”
25일 2009 세제개편안이 발표된 뒤 기획재정부의 실무자에게 수고가 많았다고 격려하자 돌아온 대답이다.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공식적으로 내놓았지만 아직 국회통과라는 큰 산이 남아 있기 때문일 테다. 세제실 국ㆍ과장들이 브리핑이 끝난 뒤 국회의원들에게 세제개편안을 설명하기 위해 여의도로 떠나는 분주한 모습도 보였다.
정부는 올해 국회에서 몇 차례나 쓴 맛을 봤다.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양도세 중과제를 폐지하려고 했지만 홍준표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 당의 강력한 반대로 대폭 수정, 한시적으로 완화 조치했다. 이미 당정협의를 마치고 관련내용을 공식 발표한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6월 임시국회 때 제출한 산업은행 민영화 세제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그런 차에 나온 세제개편안은 어느 때보다 재정건전성 관리를 위해 비과세ㆍ감면제도 정비를 통한 증세안이 다수 담겨 있다.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 변호사ㆍ의사 등 고소득전문직 과표양성화, 금융상품 과세강화, 자동차운전학원 및 미용목적 성형수술 부가세 과세 등의 내용을 보면 개인ㆍ기업ㆍ업계를 막론하고 강한 불만이 쏟아져 나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자칫 포퓰리즘적인 접근이 이뤄진다면 개편안이 갈기갈기 찢길지도 모른다.
당정 간의 기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은 18일 정부가 관세제도 개편방안을 내놓기도 전에 이를 반대하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당정협의에 앞서 기선제압을 위한 선제공격이라고 해석한다. 이 의원은 세제개편 논의가 실질적으로 이뤄지는 국회 재정위 소속 조세소위원회 위원장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올해 남아 있는 가장 큰 난제에 대해 “정기국회”라고 대답했다. 10월 재보궐선거, 내년 6월 지방선거 등 두 차례의 큰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앞설 것이라는 점을 정부 당국 스스로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세제개편안이 정치논리에 의해 누더기 세제로 바뀌고 국민에게 혼란만 불러오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