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선거 패배보다 힘든 패배 승복 연설

지난 1948년 대선에서 토머스 듀이가 해리 트루먼에게 패했을 때 그는 기자들에게 "선거전은 매우 즐거웠고 나는 그걸 즐겼다"고 말했다. 14년 후 리처드 닉슨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패한 후 그보다는 덜 정중하게 "이제 당신들이 난도질할 닉슨은 더 이상 없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처럼 선거에서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지만 패배 인정연설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며 3일 패배 승복 연설의 여러 양태를 보도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잭 발렌티는 "선거전이 얼마나 잔인했던간에 양 후보자는 모두 나라를 생각한다"며 "후보들은 모두 패배를 인정 하기보다는연장으로 손톱을 뽑는 쪽을 택할 것"이라는 말로 그 고통을 묘사했다. 대통령 선거의 패배 승복 연설을 연구해 온 호주 아델라이드 대학의 폴 코코랜교수는 지난 1994년 학술지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한 논문에서 "패배에 대해길게 늘어놓는 것은 미국인들의 성공 강박증에 위배된다"며 "공적인 실패는 치유되기 힘든 깊은 내적 슬픔과 굴욕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경우 연설문은 마이클 서슨과 캐런 휴즈가 담당하고 있다. 특히 거슨은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로 재임하던 시절부터 일해 왔으며 명연설 반열에올랐던 9.11테러 긴급 연설문을 비롯, 대통령 연설문 대부분을 작성했다. 존 케리 후보의 연설문 작성팀은 승리, 패배 또는 결과 발표 지연 등 세가지 상황에 대비한 연설문을 준비해 뒀다. 케리의 연설문은 지난 1980년 지미 카터에게 패한 테드 케네디의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을 쓰는 등 오랫동안 민주당 연설문 작성자로 일해 온 로버스 쉬럼과 협조하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쉬럼은 당시 케네디의 연설에서 전통적인 자유주의를 적극 옹호하며 "우리는 민주당의 위대한 목표가 과거 역사로 치부되게 할 수 없다"는 연설문을 만들었다. 엘리 애티는 1993년 데이비드 딘킨스 당시 뉴욕 시장이 재선에 나섰을 때 언론홍보 자문역으로 일하며 미리 승리연설과 패배연설을 함께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딘킨스가 승리연설만 쓰면 안 되느냐고 묻자 그는 패배연설을 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패배연설문이 필요해 진다는 속설이 있다고 답했다. 애티는 2000년 앨 코어 후보의 연설문 팀에서 통합을 강조하는 간략한 패배 연설 등 몇 가지 다른 버전의 연설문들을 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선 관련 법정 공방이 끝난지 5주 후 고어는 지금도 정치학을 공부하는학생들에게 전범으로 여겨지는 연설문을 직접 작성해 발표했다. 이전에는 패배수락이 전보로 이뤄지기도 했다. 1936년 공화당의 앨프 랜던 후보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보를 쳐 "국민들의 뜻이 밝혀졌습니다. 모든 미국인들은이 결과를 받아들이고 조국의 선한 대의를 위해 함께 일할 것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정신입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후 듀이 때부터 공식적인 패배 인정이 관례가 됐다. 그는 선거 다음날 트루먼대통령이 오하이오와 일리노이, 캘리포니아주에서 이겼다는 것을 알고는 급히 축하전보를 보냈다. 이후 기자들에게 "깨끗하고 건설적인 선거전을 펼쳤으며 후회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박학다식했던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1952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패한 후 애이브러햄 링컨이 선거 패배에 대해 한 말을 인용해 "우리는 울기에는 너무늙었지만 이 패배는 웃기엔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1976년 제럴드 포드는 지미 카터에게 패한 후 가장 짧은 패배 연설을 했다. 너무 목이 쉬어 말을 할 수 없었던 포드는 '집안의 진정한 대변인'이라고 불렀던 부인베티에게 부탁해 전보를 치게 했다. 한편 카터는 레이건에게 패한 후 캘리포니아주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패배를 인정해 가장 빨리 패배에 승복한 후보로 남았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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