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5월26일 밤 11시, 모스크바 크렘린궁.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전략무기제한협정을 맺었다. 골자는 요격용 미사일 제한. 상대방이 발사하는 대륙간탄도탄(ICBM)을 공중에서 맞히는 요격미사일(ABM) 발사 기지를 두 곳으로 제한하고 배치 수량을 200기로 한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미소 양국은 왜 군비경쟁을 억제한다며 방어용 무기를 제한했을까. 방어용 미사일을 오히려 늘리는 게 평화에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나올 법 하다. 미소의 합의에는 공격능력을 살려둬야 서로 무서워 도발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개념이 깔려 있다. 요격용 미사일을 200기씩 인정한 것도 선제공격을 받은 쪽이 전멸 당하지 않고 보복에 나설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보장함으로써 핵전쟁을 막자는 취지다. 3차대전 방지장치로 작동해온 이 협정은 2001년 깨졌다. 전면적 핵전쟁 가능성이 낮아졌어도 ‘불량 국가’에 의한 핵공격 위험에 대응하는 데 이 협정이 장애물이라고 판단한 부시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깨뜨렸기 때문이다. 협정을 파기한 미국은 지구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망(Missile Defence) 구상에 매달렸다.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된다는 지적에 따라 MD 계획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 문제는 PSI를 둘러싼 갈등이 가장 첨예한 지역이 한반도라는 점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 분위기 속에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하고 한국은 PSI체제 편입을 강행할 태세다. ABM 협정이 맺어진 37년 전 오늘 동서독은 통행협정을 맺었다. 어찌 이리도 다를까. 한반도는 왜 이토록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