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디트로이트를 방문하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취재와는 상관없이 이번 선거에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자동차 회사의 한 임원은 대통령으로는 공화당의 보브 돌 후보를 지지하지만 하원의원은 민주당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조간부 한 사람은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재선되길 바라지만 의회는 공화당을 원한다고 대답했다. 정치 성향은 분명 달랐지만 두사람의 사고방식은 같았다. 대통령과 의회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었다.5일 자정 클린턴 대통령의 고향 아칸소주 리틀록에는 축포가 밤하늘을 장식했다. 클린턴은 승리에 찬 목소리로 그의 선거구호였던 「21세기로 가는 다리」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선전한 돌 후보에게 성원을 보내며 조만간 한번 만나보겠다』며 정적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앞서 워싱턴의 선거본부를 지키던 돌 후보도 클린턴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와 함께 21세기의 미국을 이끄는데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또 지지자들에겐 상하양원을 지켰기 때문에 선거에 승리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제43대 대통령과 상하양원 의원을 뽑는 96년 선거는 민주당이 행정부를, 공화당이 의회를 각각 장악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어떤 선거에든 승자와 패자가 있게 마련이지만, 이번 선거에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민주·공화 양당 모두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디트로이트에 만났던 노사 간부의 의견처럼 미국인들은 균형을 선택한 것이다. 21세기의 지도자로 클린턴을 선택하면서도 그를 견제할 정치세력에도 힘을 몰아주었다.
균형은 때론 불필요한 대립과 논쟁을 거치지만 독선이 가져오기 쉬운 오류를 줄이고 공동의 적 앞에서는 큰 힘을 발휘한다. 80년대 일본 자동차에 밀려 시장의 30%까지 내준 미국 자동차공업이 지난해 시장의 90%를 다시 회복한 것도 균형이 가져온 파워 때문이다. 그곳에서 만난 회사간부는 회사 경쟁력을 높이게 된 것은 노조의 협조 덕분이라고 말하고 노조도 회사의 파이를 키워야 근로자에게 돌아올 파이가 커진다는 생각하고 있었다.
클린턴은 당선 연설 말미에서 『선거의 최대 승자는 미국인』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21세기의 지도자가 균형의 힘을 발휘하길 기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