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혼돈과 프랙탈의 세계

“이놈의 발가락 보게. 꼭 내 발가락 아닌가. 닮았거든…” M은 열심으로 찬성을 구하듯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M이 보라고 내어놓은 어린애의 발가락은 안 보고, 오히려 얼굴만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가, 나는 마침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발가락뿐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네” 그리고 나의 얼굴로 날아오는 (의혹과 희망이 섞인) 그의 눈을 피하면서 돌아앉았습니다. 김동인이 1932년에 발표한 단편 `발가락이 닮았다`의 마지막 대목이다. 사회가 어지럽다. IMF외환위기로 촉발된 기존 패러다임의 파괴와 부정, 기존 시스템에 대한 변화의 압력이 극에 달하고 있는 느낌이다. 혼란ㆍ혼돈은 구질서가 새로운 질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러나 노사문제, 부안사태, 정치자금수사, 교육제도, 부동산정책, 북핵문제, 이락파병 등 거의 모든 정책이슈에 대해 사회적 갈등이 지나치게 깊어 간다.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거대 야당의 당수가 단식 농성을 하고, 대통령을 못해 먹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세상이 돼버렸다. 우리 사회가 혼돈의 가장자리에 이르러 21세기 100년의 운명이 정해지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잘 하면 바람직한 새 구조와 새 질서를 만들어 10년 내에 국민소득 2만 달러의 목표를 달성하여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설 수도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5,000달러 선으로 내려앉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그 때가 되면 그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들은 모두 현직을 물러나 있겠지만 우리의 자손들이 짊어질 고통의 멍에는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대단히 혼돈스러운 자연과 사회현상 속에도 기하학적 규칙성, 즉 동일한 기본요소가 반복적으로 나타나 규모에 무관하게 스스로 닮는 자기유사성이 있으며 이러한 특성이 있는 구조를 프랙탈(fractal)구조라고 한다. 폴란드 태생의 만델브로트박사는 점은 0차원, 선은 1차원, 면은 2차원이라는 유클리드기하학의 개념을 거부하고 많은 물체들은 정수가 아니라 분수로 측정해야 한다는 혁명적인 발상을 했다. 모든 물체의 유효차원은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0차원과 3차원 사이에서 분수로 표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영국의 해안선은 1.25차원, 인간의 동맥은 2.7차원으로 계산된다. 프랙탈이란 일반적으로 무한히 세분되고, 무한한 길이를 가지며 스스로 닮아 가는 반복 점진에 의해 만들어 지는 특성을 가진 기하학 모형이며 프랙탈 구조는 많은 사회 및 자연 시스템의 핵심적 모습이다. 하위시스템들은 모두 프랙탈 구조를 지닌다. 국민들이 자기도 모르게 대통령의 언동을 닮아가고, 기업의 구성원들 역시 리더를 흉내 내고 그의 가치관에 동조하는 자들만 살아 남는다. 기업문화가 강한 기업의 구성원들은 신통하게도 서로 닮아 간다. 시스템 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보기에는 우연의 결과요 독립적인 사상인 것 같지만 공간과 시간 축에서 모두 프랙탈 현상이 일어난다.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닮은 꼴들이 양산된다. 어떤 시스템 내부의 안정성이 파괴되어 임계점에 도달하면 외부의 작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스템이 안정상태에 있을 때는 일련의 규칙에 의하여 시스템이 제어되지만, 시스템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을 때는 사소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또는 문화적 초기 조건의 변화가 증폭되어 전체 시스템을 바꾼다. IMF외환위기 역시 환경과의 마찰이 심해져 효율이 저하된 국가운영시스템이 블룸버그통신의 뉴스라는 작은 충격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변혁의 시대에는 각급 조직이 변화의 파도, 요동을 잘 탈수 있는 자세와 새로운 질서와 구조를 만들어가는 힘(자기조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과 생물체의 자기조직화에는 공통점이 많다. 생명체는 번식ㆍ보전의 목표의 단일목표를 위해, 기업은 이익ㆍ가치극대화의 단일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환경과 끊임없이 자원과 에너지를 교환하며 자기의 구조와 질서를 환경에 맞게 끊임없이 조정, 즉 자기조직화해 나간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업들은 양의 피드백이 작용하는 자기조직화 구조를 갖추고 성장을 지속하여 국가경제를 이끌어 왔다. 이제 우리는 우리 기업들이 음의 피드백 과정에 들어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기업의 활력이 멈추는 순간 우리나라는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쇠퇴의 갈림길로 접어 들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섭(이화여대 경영부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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