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10월 28일]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미국에서 발생된 국지적인 위기인데도 국경을 넘어 유럽과 일본, 그리고 이머징 마켓으로 급속히 위기가 전이되고 있다. 세계 금융시스템이 붕괴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은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실물경제가 상당기간 침체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전세계적인 위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이번 미국발 사태를 보면서 그간 시장주의자들이 전지전능의 신으로 신봉해온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금융시장은 지난 1980년대 이후 전세계를 풍미한 신자유주의의 최선봉에 서서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극대화하는 데 전력질주 해왔다. 그러나 시장의 덩치가 커지고 영향력이 확대돼가는 그 뒤안길에서 국가의 기능과 권위는 점차 왜소해지고 일상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시장은 효율적인데 국가는 비효율적이며, 민간기업인들은 유능한데 공무원들은 무능하며, 기업은 깨끗하고 투명하나 공공 부문은 부패해 있다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권불 10년’이라 하지 않았던가. 국가에 대한 시장우위가 확고부동한 시스템으로 구축돼가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던 금융시장의 그 밑바닥에서는 절제되지 않는 탐욕이 시스템의 밑동을 갉아먹고 있었고 그것이 결국 이번 사태로 귀결되고 말았다. 사태가 발생하자 아이로니컬하게도 그간 국가의 규제와 간섭을 극도로 싫어했던 그 사람들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고 나섰다. 심지어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거나 늑장 개입한다는 비판도 서슴지않고 있다. 9월 파산한 세계적인 투자은행(IB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회장 리처드 풀드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왜 미국정부는 158년의 역사를 가진 리먼을 구제하지 않았는지 무덤에 갈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발언을 해서 시민에게 얻어맞았다고 한다. ‘규제나 정부개입은 악’이라는 논리로 똘똘 뭉친 세계유수의 IB은행의 최고경영자(CEO)로, 회사는 망해가고 수많은 투자자들은 재산을 날려 실의에 빠져 있는데 자기는 천문학적인 연봉을 챙겨 놓고는 이제 와서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에 나서지 않는다는 비난을 서슴지않고 있으니 누가 그 후안무치(厚顔無恥)를 참을 수 있을 것인가. 어찌됐든 이번 사태로 명확해진 것은 시장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이며 역설적으로 시장실패를 방지하는 데 있어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관치(官治)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고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시장주의자들은 벌써부터 관치금융으로의 회귀를 걱정해서인지 이렇게 빈정거린다. “이번 사태로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는 집단은 감독당국이다. 그동안 시장을 휘어잡을 핑곗거리가 없어 속이 탔는데 이번 금융위기를 기회로 규제의 칼을 휘둘러댈 것이다”라고. 물론 이런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식의 관치가 바람직한 것이 아니듯이 시장만능주의나 시장우월주의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시장과 국가기능의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다. 국가는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시장이 모럴해저드에 빠지거나 불공정 경쟁에 빠지지 않도록 필요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시장도 국가의 규제와 감독에는 철저히 순응하고 이익의 확대와 리스크 관리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태가 ‘큰 시장,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MB정부의 국정기조가 조화와 균형감을 잃지 않도록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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