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실향민 백준기 할아버지 "죽기전 북녘 고향땅 밟아봤으면…"

"두어달 숨어지내라" 말 끝으로… 가족과 생이별 57년 타향살이<br>고향방문 평생소원에 짐될까… 아픈 허리디스크 수술도 마다<br>남북관계 악화 소식 들려오면… 희망조차 사라지나 조마조마

한가위 민족대이동이 시작된 12일 북한 황해도가 고향인 실향민 백준기 할아버지가 자신의 젊었을 적 사진을 들어보이며 57년간 떨어져지낸 고향과 가족에 대한 간절한 추억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죽기 전에 북쪽 고향 땅 한번 밟아보는 게 마지막 소원입니다.” 황해도 벽성군 동운면 사동리가 고향인 백준기(76) 할아버지. 고향을 떠나온 지 올해로 58년째다. 5남매를 잘 길러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올 추석을 맞는 백 할아버지는 어느 때보다 짙게 묻어나는 고향 생각에 몸이 바싹 타들어간다. 백 할아버지는 4~5년 전만 해도 고향 땅을 밟아볼 부푼 꿈으로 매일 설레이며 살아왔다. 이웃의 이산가족 상봉 소식에 내 일처럼 기뻐했고 ‘나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 하는 기대로 힘을 얻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기력도 떨어져 고향에 대한 꿈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더구나 심장병에다 허리디스크, 전립선 질환 등 6~7가지 병을 달고 있어 더욱 조바심이 난다.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어서 통일이 돼서 고향 땅이나 한번 밟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백 할아버지는 심각한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지만 수술을 마다 하고 있다. 수술이 잘못돼 거동을 완전히 못하게 되면 평생의 소원인 ‘고향 땅을 걸어서’ 둘러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는 “죽을 만큼은 아니니 끝까지 버텨보겠다. 그래서 고향 땅은 두발로 걸어서 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백 할아버지는 “몸이 아프니까 고향 생각이 더 난다”며 인터뷰 도중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요즘은 TV 뉴스도 백 할아버지를 괴롭히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 관계가 안 좋아졌다느니, ‘김정일’이 위독하다느니 등등의 대북 관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백 할아버지는 ‘고향 가는 길’이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영 불안하다. “요즘 돌아가는 것을 보니 어느 한쪽이 무력에 의해서라도 제압하지 않으면 통일은 요원한 것 같다”며 “4~5년 전만 해도 북쪽 친척들을 한번만이라도 만나고 죽었으면 하는 기대가 넘쳤는데 이제는 그런 희망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고향과 생이별 한 것은 지난 1951년 3월. 17살 때다. 전쟁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백 할아버지 가족은 대가족으로 모여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전쟁과 함께 큰 형은 북한군에 끌려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됐고 집안이 상대적으로 부유했다는 이유로 핍박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전쟁 중 생계를 이어가려고 무리하게 조업을 나섰다가 객지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6살 때 친어머니를 여의자 아버지는 재혼했는데 새어머니는 백 할아버지라도 살리려고 “두어 달간만 숨어 지내라”며 당시 피난민들이 집결해 있던 황해도 인근의 작은 섬으로 보냈다. 이것이 고향과 가족들과의 마지막이 돼버렸다. 백 할아버지는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아버지 주민증에 붙어 있던 사진이라도 오려서 내려오는 건데…”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는 남쪽에서 12년간의 직업군인으로 제대 후에는 택시운전 등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고향에 갈 수 있겠지” 하는 꿈이 있어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힘겹게 버텨올 수 있었다. 아픈 몸에 추석까지 다가오면서 백 할아버지의 고향 생각은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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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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