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책 시행된 것 있나” 불신기아협력회 회장인 남양공업의 홍성종 사장(71)은 보름째 병원침상에 누워있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 두달째 협력업체들을 이끌다보니 과로가 겹쳐 쓰러졌다.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남양공업도 1차 부도를 내고 겨우 최종 부도를 면하는 등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버텨나가야했던 만큼 정신적 고통이 컸으리란 것도 쉽게 짐작할수 있다.
『우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같은 고통을 당해야 하나』하며 눈시울 을 붉히던 홍사장은 결국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인 부담을 이기지못해 쓰러지고 말았다.
과로로 쓰러진 홍사장의 모습은 기아협력사들의 처지를 얘기해주는 것이기도하다. 기아협력사들도 홍사장처럼 이미 쓰러졌거나 쓰러질 위기에 처해있다.
기아부도유예협약 적용이후 두달동안 부도를 내고 쓰러진 기아자동차 협력업체는 모두 16개사. 2, 3차 협력 부품업체까지 포함하면 80여개사가 부도를 낸것으로 추정된다.
기아협력사 사장들은 아직 부도를 내지는 않았더라도 사실상 부도 상태나 다름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어음할인을 받지 못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친구와 친척돈 까지 끌어다 운영자금으로 쓰다보니 이제는 더이상 손벌릴 곳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원들 급여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업체가 부지기수다. 월급을 제때 주지못하는 업체가 늘어나면서 직원들의 이탈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안산의 2차 협력사인 S사의 경우 직원 30여명가운데 전문 기능인력 4∼5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군포의 대형 부품사인 D사에서는 현장 근로자뿐아니라 연구소인력까지도 이탈하는 사례가 발생해 기아사태가 해결된다해도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심각해 지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책은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지난 7월15일부터 이달 4일까지 51일간 부품업체들이 시중은행에서 할인받은 어음액수는 2천9백57억원이다.
이같은 액수는 기아와 아시아자동차 협력사들의 50일간 평균 납품액인 5천7백27억원의 51.6%에 불과하다.
문제는 어음할인을 받은 업체가 대부분 담보능력이 있는 업체들이란 점이다. 담보능력이 없는 영세업체들은 진성 어음을 갖고도 은행문턱을 넘지못하고 있다.
정부가 한국은행을 통해 시중은행에 기아협력사 지원자금 3천5백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는 했지만 지점 창구에서는 여전히 담보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용보증기금의 특례보증도 부품업체 경영진에게 직접 서명 날인 할것을 요구하는 등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부품업체들은 진성어음을 할인받지못해 자금회수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게 됐고 2차 납품업체와 원자재 공급업체에 발행한 어음을 결제해주지 못하고 있다.
여기다 원자재 공급업체들은 부품업체들에 현금지급을 요구하고 있어 기아협력사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정부의 발표만을 믿은 부품업체 근로자들은 경영주가 은행에서 지원을 받고도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며 항의하는 사태마저 발생하고 있어 협력사 사장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기아협력사를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오히려 업체들에는 부담만 주는 꼴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정부의 지원책이 제대로 시행된게 하나라도 있느냐』고 반문하는 기아협력사 사장들의 목소리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 배어있었다.<이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