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파괴' 심화… 수익성 위협<br>로컬기업 잇단 저가공세로 출혈경쟁 가속화<br>임금 상승·외자기업 우대혜택 축소도 '발목' <br>첨단제품 앞세운 시장 선점만이 "생존 해법"
| 중국은 한 때 외국자본들에게 '블루오션' 이었지만, 이제는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레드오션' 이 됐다. 오성홍기 뒤로 중국의 성장을 상징하는 상하이 푸동지구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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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다. 13억 소비자를 지닌 ‘황금시장’, ‘저임(低賃)의 풍부한 노동력’ 이라는 메리트를 앞세워 부푼 꿈을 안고 중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중국 현지 기업들과의 무한 출혈경쟁 ▦두 자리수가 넘는 임금상승률 ▦예상치 못한 노사분규 ▦외자기업에 대한 우대조치 축소 등 예측 불허의 중국 정책 변화 등으로 진퇴양난에 직면해 있다. 서울경제는 급변하는 중국 시장의 변화상과 이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을 5번의 시리즈 기획기사를 통해 찾아본다.
톈진(天津)에 진출한 플라스틱 사출제품 제조회사인 S사. 이 회사는 최근 베트남 또는 인도로 공장을 이전하는 문제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현지 로컬업체들의 복제품이 대거 쏟아지고 있는데다 무차별적인 저가 공세로 인해 중국에서 수익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K사장은 “현지업체들과의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도저히 타산을 맞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중국을 벗어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말했다.
이는 일부 중소기업만의 얘기가 아니다. 삼성, LG 등 대기업들도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익성만 줄면 그나마
다행이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에 적자로 반전됐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 등 극단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고 암울한 터널 속에서 생존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불과 2~3년전까지만 해도 ‘블루오션’으로 각광받던 중국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중국의 경영환경이 급변한 이유는 외자기업과 로컬기업들의 경쟁적인 진출로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거의 모든 부문에서 공급과잉이 발생한데다, 이를 바탕으로 한 ‘가격파괴 전쟁’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저가경쟁으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는 곳은 전자업계다. TV, 냉장고 등 가전시장에서 촉발된 ‘출혈경쟁’은 휴대폰, 노트북 PC, LCD TV 등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시장으로까지 번져 중국진출기업들의 수익성을 위협하고 있다.
100~200위안(약 1만2,000~2만4,000원)대의 전자레인지, 300위안대의 TV 등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그 동안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지녔던 LCD TV, PDP TV, 양문형 냉장고 등도 가격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4년 3만위안대에 달했던 42인치 PDP TV는 현재 6,000위안대의 제품이 나오는 등 가격파괴가 심화하고 있다.
휴대폰 시장도 심각하다. 중국 로컬업체의 공세에 맞춰 노키아, 모토롤라 등 다국적 기업들이 300~400위안대 제품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휴대폰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휴대폰 1대당 시장평균가격이 1,426위안이었으나 올해 1,248위안으로 떨어졌다.
중국시장에 ‘올인’하며 새로운 생존책을 모색해 온 국내 중견 휴대폰 업체인 VK가 무너진 것도 이 같은 저가공세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의 휴대폰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김동환 부장은 “신규업체는 물론 일부 다국적기업들의 저가 공세로 시장질서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며 “무엇보다 현지업체들의 대거 진출로 ‘제살깎기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자동차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적인 업체 모두가 중국시장에 진출하면서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다른 자동차 업체들에 비해 그나마 중국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베이징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내수판매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영업이익률이 매년 감소해 지금은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3년까지만 해도 자동차 업계의 영업이익률이 20%를 웃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불과 3년사이에 수익률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수익성 악화 현상이 단기간에 그칠 것 같지 않다는데 있다. 특히 위안화 절상으로 인한 중국제품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내수시장의 공급과잉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출혈경쟁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상무부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900개 주요 공산품의 70% 이상이 만성적인 초과공급 상태다.
특히 지난 7월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146억2,000만달러로 다시 사상최고를 기록하면서 위안화 추가절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실제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9일 웹사이트에 올린 2ㆍ4분기 통화정책보고서에서 국제수지 불균형을 조절하는데 환율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민은행의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환율 유연성’ 강조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지난달 2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환율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위안화 환율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데 이은 것으로 이르면 9월, 늦어도 11월에는 추가절상이 단행될 전망이다.
이는 앞으로의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중국시장이 결코 ‘블루오션’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해 주고 있다. 따라서 첨단 고가제품 등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하는 것만이 중국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승호 삼성경제연구소 베이징사무소장은 “품질은 물론 서비스가 차별화된 프리미엄 상품을 한발 앞서 출시하고 새로운 수요처를 발굴하는 것이 중국에서 살아남는 비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기업 10곳중 3곳 "中법인 이전계획·검토"
본지, 150개 기업 조사 결과 동남아·서남아로 이전 고려
중국에서의 경영환경이 악화됨에 따라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 10곳 가운데 3곳이 법인이전을 계획하거나 이전을 심각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은 중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의 떠날 의향이어서 중국이 우리기업의 투자지역으로서의 매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제가 중국에 진출한 150개 한국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의 7.8%가 현재 법인이전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전을 검토하고 있는 기업도 23.2%에 달했다. 이전을 할 경우 고려하고 지역으로는 중국내 외곽지역이 49.1%로 가장 많았고 ▦동남아(24.3%) ▦서남아(15.9%) ▦북한(8%) 등의 순이었다. 이는 중국에 대한 투자 매력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져 그 동안 중국 집중현상을 보였던 우리 기업들의 투자가 앞으로 동남아나 서남아 등 중국 인근국가로 분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탈(脫) 중국’을 생각하게 된 동기로는 50.2%가 현지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 다음은 ▦투자장벽이 높아서(16.4%) ▦중국정부의 외자기업 우대 축소(10.4%) 등 정책변화 때문이라는 것이 그 뒤를 이었다.
경영이 악화된 이유로는 ▦임금상승(28.1%)과 ▦구인난(23.4%)을 가장 많이 꼽았고 ▦과당경쟁(18.2%) ▦환율불안(13.6%) ▦세제변화(10.8%) 등도 경영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했다.
경영악화 요인을 업종별로 보면 경공업부문은 구인난과 세제변화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고, 중공업은 과다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전기전자업종은 높은 임금상승과 과도한 저가경쟁이 최대애로요인이라고 각각 답했다. 특히 임금상승과 관련, 앞으로 노동법 개정에 따른 노동자의 권익증대로 더욱 가파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위안화 절상에 따른 경영환경 변화에 대해서는 ▦다소 악화(62.5%)되거나 ▦크게 악화(15.7%)될 것으로 답해 위안화 절상도 경영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이 같은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투자를 확대(38.3%)하거나 현상유지(50.4%)할 것이라고 답했고,
투자를 축소할 계획인 기업은 11.3%에 불과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법인 이전에 따른 비용부담이 큰데다 아직까지는 중국시장에서 버틸 여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투자 축소하거나 중국에서 ‘보따리’를 싸는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 기업 관계자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70% 이상이 노동집약산업이기 때문에 경영여건이 나빠지는 한 중국투자를 줄이거나 중국에서 철수를 고려하는 기업이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