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11월15일, 도쿄. 보수정당인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이 자유민주당의 기치 아래 합쳤다. 1993년까지 38년간 권좌를 지킨 일본 자민당의 출발점이다. 일주일 뒤 또 다른 합당이 일어났다. 좌파와 우파로 갈라졌던 사회당이 재통합한 것. 집권 자민당과 만년 야당인 사회당으로 요약되는 일본의 ‘55년 체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55년 체제를 낳은 숨은 주역은 재계. 한국전쟁 특수로 해마다 연간 수출액을 넘는 달러가 쏟아지며 세력을 키운 재계가 막후에서 보수정파 간 결집을 이끌었다. 재계의 입김으로 출범한 만큼 자민당은 시작부터 경제부흥의 깃발을 치켜 올렸다. 정치와 관료집단, 재계 간 찰떡 공조문화도 생겨났다. 관료들이 인허가나 행정지도, 낙하산 인사로 재계를 이끌고 재계는 정치자금을 대며 자민당은 관료 출신의 정계 입문 길을 터주는 공동지배구조를 구축한 것. 한때 자민당 소속 의원의 30%가 관료 출신으로 채워진 적도 있었다. 55년 체제가 무너진 것은 1993년. 록히드 사건, 리쿠르트 파문 같은 부패와 파벌정치 탓에 자민당 일부가 탈당하고 유권자들도 등을 돌려 야당 연합에 정권을 내줬다. 당시 언론은 ‘55년 체제 붕괴’를 대서특필했지만 과연 그랬을까. 그렇지 않다. 10개월만 정권을 잃었을 뿐이다. 연정을 통한 자민당의 집권이 이어지고 있다. 보수 양당체제가 등장할 기미까지 보인다. 55년 체제의 골격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55년 체제는 우리를 볼 수 있는 프리즘이다. 보수성향의 대권 후보가 1, 2위를 달리는 점도 일본의 보수양당제 흐름과 비슷하다. 한국의 정치기상도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점이 하나 있다. 경제성적표가 정치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자민당의 독주가 흔들린 시점도 경기침체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