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진로처방」살리기에만 급급/부도방지협약 첫 대상에… 회생 가능성

◎소비재 기업부터 지원 “명분 상실”/사실상 부도 불구 경영권은 그대로대기업 부도방지를 위한 「특단의 조치」인 금융기관간 부도방지협약이 21일 정식발효되고 진로가 첫 대상이 됨에 따라 진로그룹은 회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협약은 한보·삼미사태로 우리 경제와 은행경영이 치명타를 입게됨에 따라 더 이상의 부도를 막아야 한다는 절실한 사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너무 당위성만 의식, 조급하게 서두름에 따라 곳곳에서 무리수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가 진로그룹을 겨냥한 측면이 강해 특혜시비도 일어나고 있다. 한보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국가기간산업인 철강업을 영위하는 삼미는 무너뜨리고 소비재중심 기업인 진로를 살린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것. 특히 이번 조치는 진로의 경영권에 대한 아무런 결정도 없이 이루어져 특혜의혹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진로는 지난 87년 서울 서초동의 대규모 부동산을 인수, 유통업에 진출하는 등 불과 10년 사이에 계열사를 7개에서 32개로 늘려 문어발확장의 대표적 사례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기업이다. 이 협약은 그 성격상 엄청난 특혜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첫 수혜대상인 진로그룹을 예로 들어 보자. 진로는 21일부터 「사실상」부도가 난 것과 다름없다. 융통어음은 물론 실제 물품거래에 따른 진성어음도 결제가 거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환어음은 부도가 나면서도 회사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은 하등의 지장을 받지 않는다. 어음부도에 따른 당좌거래정지, 불량거래처 등록 등 제재조치가 「협약」에 근거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가 사실상 부도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회사의 경영권은 침해받지 않는다. 물론 추가지원 결정과정에서 채권단이 기업주로부터 재산처분 위임장, 주식처분 위임장, 주식포기각서, 구상권포기각서 등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기업의 재무상태가 어느 정도로 악화됐을 때, 또 어느 정도의 추가지원에 대한 대가로 각서를 받을 것인지 ▲만일 해당기업이 각서제출을 거부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근거규정이 없다. 만일 이같은 요구를 한다해도 이미 그때는 해당기업의 부도방지를 위해 채권회수가 동결된 상태여서 이후 사태전개역시 「부도는 낼 수 없다」는 쪽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많아 경영권 포기는 어려울 것으로 금융권은 전망하고 있다. 협약이 이같은 특혜성에도 불구하고 연쇄적인 대기업 부도를 위해 「불가피하게」만들어 졌다는 점을 인정한다해도 「왜, 진로그룹부터 인가」하는 의문이 남는다. 한보그룹의 비도덕적·비사회적 경영행태를 볼 때 한보는 제외하더라도 철강, 특히 특수강 생산을 중심으로 한 삼미그룹의 경우 소비재산업이 위주인 진로그룹보다는 국가적·사회적으로 「회생시킬 가치」가 훨씬 큰 기업이지 않느냐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진로의 회생」을 위해 하청업체 등 관련기업, 채권금융기관, 타 대기업 등이 당하는 피해도 문제다. 협약에는 대표자회의 결의를 거쳐 하청업체의 납품대금 등을 결제해 준다고 규정돼 있으나 채권은행들은 「사실상 부도난 기업」의 하청대금 결제도 가능한 피했으면 하는 눈치이다. 2금융권은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고 있다. 단기, 신용여신을 주로하는 2금융권 입장에서는 진로사태로 상당부분의 운용여신이 동결당하는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종금등 2금융권은 물론 은행권역시 제2의 진로사태가 예상되는 기업에 대한 여신을 조기회수하거나 신규여신취급을 거부, 진로외의 대기업들까지 자금난을 겪고 있다. 금융권은 이에 따라 진로 회생의 불가피성은 인정한다해도 경영부실을 초래한 그룹오너의 재산처분위임장, 주식포기각서 등 책임추궁은 「추가지원, 기업회생의 전제조건」으로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진로를 살리기 위해 다른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죽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 부도방지협약의 구체적인 시행과정에서 철저히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안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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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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