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엔 급등] 국제자본 亞로 역류 경제위기극복 큰도움

【뉴욕=김인영 특파원】 아시아 통화 위기를 초래했던 엔저 시대가 가고, 급격한 엔화 강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 외환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의 경제 여건을 감안, 엔화 가치가 조만간 1달러당 110엔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시 찾아온 엔고가 한국과 아시아 경제 회복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엔화 강세가 지속되면 국제시장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중국과 홍콩의 평가절하 위협이 사라지게 된다. 엔화 강세와 더불어 아시아 증시가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 속속 나오면서 뉴욕 증시와 채권시장에 잠겨있던 국제 유동성이 아시아로 방향을 전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제 유동성 대탈출로 극심한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으로서는 국제 금융시장의 역류 조짐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7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일본 엔화는 미국 달러화에 대해 최저 118.80 엔까지 폭등했다. 엔화는 전날 종가인 1달러당 130.29 엔에 비해 하루만에 11.49 엔(8.8%)이나 폭등했으며, 이는 하루 변동폭으로 지난 73년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래 25년만에 최고 기록이다. 이날 뉴욕 시장에서 엔화 급등의 직접적 동기는 헤지 펀드들이 미국 재무부 채권을 매각하고, 엔화를 대량 구매했다는 루머 때문이었다.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 줄리안 로버트슨의 타이거 펀드, 지난달 월가 은행들의 구제금융을 받은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드(LTCM) 등이 그 주인공이다. 헤지 펀드들은 그동안 이자가 싼 엔화 대출을 받아 뉴욕 증시에 투자하는 이른바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 방법을 사용해왔다. 헤지 펀드들은 지난 8월 이후 뉴욕 증시가 침체하자 증시에서 돈을 대거 빼내 채권시장에 묻어두었다. 그러나 러시아 사태 이후 많은 돈이 물리고, 국제 은행들의 자금 회수 독촉이 심해지자 헤지 펀드들은 캐리 트레이드를 풀어 미국 국채를 대량 매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뉴욕 채권시장에서 30년 만기 미 재무부 채권 가격이 1,000 달러당 22.19 달러나 폭락한 사실이 루머를 뒷바침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당분간 상당수의 헤지펀드들이 캐리 트레이드를 풀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그렇게 되면 엔화 강세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엔화 강세의 또다른 이유는 일본이 금융개혁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는데 비해 미국경제가 내년도에는 침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데 있다. 그동안 일본이 금융개혁을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 외환 거래자들이 엔화를 투매하는 원인이 됐고,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일본에 비해 강하다는 것이 달러 강세의 이유였다. 그러나 이제 역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측 요인으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추가 경기부양책을 제시했고, 국회가 여야 합의로 금융회생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커진 것도 외환 거래자들의 엔화 매수세를 촉진시켰다. 미국에서는 앨런 그린스펀 연준리(FRB) 의장이 7일 『내년 미국 경제전망이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고 말해 달러 폭락을 촉진시켰다. 그린스펀은 미국 경영학회 연설에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은행들이 대출을 축소함에 따라 건실한 기업들까지 필요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신용 경색(credit crunch)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추가 금리인하를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중앙은행이 앞으로 3~4차례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달러에 대한 투자 이익이 줄어들어 투자자들의 엔화 매수세가 가속화할 전망이다. 문제는 미국의 경제전망이 어둡다는 점이다. JP 모건은 내년도 미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고, 메릴린치 증권은 내년도 미국 성장율 전망치를 2.1%로 잡았다가 최근에 1.6%로 낮춰 조정했다.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부 장관의 「강한 달러」 이론은 강한 미국 경제를 토대로 전개됐다. 클린턴 행정부도 8년간 지속된 미국 경제 호황이 막을 내릴 조짐을 보임에 따라 무역적자 확대를 감수하며 더이상 강한 달러를 고수할 명분이 없게 된다. 일본 통산성 산하 대외무역기구의 하타케야마 노보루 회장은 이미 1달러당 110엔을 용인하겠다고 밝혔다. 국제 외환 딜러들은 달러 투매-엔화 매입 작전을 당분간 지속할 전망이어서 과연 일본이 110엔의 마지노선을 지킬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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