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가 포커스] 코파카바나 해변의 두모습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이 해수욕장의 낮과 밤은 판이하게 다르다.낮엔 긴 백사장을 따라 늘씬한 라틴계 미녀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조깅을 하거나 일광욕을 즐기는 천국이다. 하지만 어둑어둑해지면 해변도로에 초라한 모습의 노점상들이 전등불 하나에 의지해 조악하게 가공한 보석류, 가난한 화가의 그림, 싼 옷가지들을 진열하고, 인근 부유층과 외국인 관광객을 기다린다. 지난 99년 여름 취재차 브라질을 방문하면서, 코파카바나 해변의 야시장에 보석 진열대를 차려놓은 70대 노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뉴욕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그는 "여기에 있는 노점상들은 사실상 실업자"라며, "뉴욕 월가는 브라질에 빌려준 빚을 받아내기 위해 실업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한게 기억난다. 상파울루의 부자촌은 미국의 부자 타운보다 호화찬란하지만, 산등성이 달동네는 한국의 60년대 판자촌을 연상케 한다. 페르디난도 카르도수 대통령이 10년 동안 글로벌 경제를 받아들인 결과는 빈부 격차의 심화였다. 3년이 지난 지금, 코파카바나 해변 야시장의 실업자들은 금속노동자 출신인 노동당의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그의 당선으로 미국의 안방인 라틴아메리카에 최대의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고, 미국 언론들은 연일 남미의 경제위기를 우려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룰라의 당선이 확정되자 가난한 사람들은 마치 갑자기 부자가 되기라도 한것처럼 길거리를 뛰쳐나오며 환호했다. 하지만 룰라는 당선과 동시에 그를 지지해준 서민 대중보다는 대형 뱅커등 부유층의 눈치를 살펴야 할 입장이다. 해외 자금 이탈은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브라질 부유층들이 돈을 다 빼내갈 경우 룰라는 빈털터리 국가를 인수하게 되는 것이다. 연초에 이웃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자ㆍ빈민의 시위가 격해지자 부자들의 해외송금 규모가 커지고, 그 결과는 페소화 절하와 국가파산 선언이었다. 브라질 국민의 민심을 이반시킨 카르도수 현 대통령도 70년대 남미 종속이론의 대부였지만, 대통령이 된 후 시장 개혁을 주도했다. 폴 오닐 미 재무장관은 "룰라가 미친 사람이 아니다"며 좋은 정책(?)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룰라의 브라질은 코파카바나 해변의 두 모습처럼 진퇴의 기로에 서 있다. 부자와 관광객들이 야시장을 찾지 않는다면 노점상의 실업인구는 누가 먹여 살릴 것인가. 뉴욕=김인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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