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인터넷 실명제의 함정

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YMCA가 최근 발표한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실명제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명제 도입에 따른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해서도 73%가 우려를 표시했으며 56%의 응답자는 자유로운 정보 교류나 의견 교환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사이버 폭력 방지를 위해 실명제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로부터 발생할 개인정보 유출 및 표현의 자유 침해 등을 염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이버 폭력이 날로 기승을 부리고 그 피해가 막심하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문제는 실명제가 궁극적인 대책이 될 수 있는가이다.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조사에 따르면 실명제로 운영되고 있는 공공 사이트 게시판에서도 여전히 사이버 폭력은 만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벽한 실명제 공간인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도 사이버 폭력은 심각하다. 최근 가수 강원래씨 미니홈피에서 벌어진 장애인 비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실명제는 결코 궁극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실명제는 보다 심각한 사이버 폭력을 초래할 수 있다. 사이버 폭력의 대표 사례로 거론되는 개똥녀 사건이나 서울대 도서관 폭행 사건에서 보듯 얼굴ㆍ이름ㆍ신상명세가 고스란히 공개될 경우 익명의 욕설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고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신상정보가 노출된 공간 역시 실명으로 운영되는 미니홈피였다. 실명제는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또 다른 사이버 폭력을 증폭시킬 뿐이다. 실명제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도 문제다. 투표나 선거, 각종 여론조사 등은 한결같이 익명성 보장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가장 자유롭고 솔직한 의사 표현은 익명성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명제는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는 위헌적 제도이다. 사실 익명이냐 실명이냐는 웹사이트 운영자가 선택하거나 이용자들간의 합의를 통해서 결정하면 될 일이다. 자율적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은 채 모든 인터넷 공간을 실명제라는 획일적인 제도로 강제화 하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공할 사이버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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