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뉴욕주재 한국상사들 표정(경제 총체적 공황)

◎“$ 없어 수출길도 막혀”/현지은 LC거절… DA도 개설 안해줘/미 은들 자금요청땐 “대선이후에 보자”/“정부·정치권 신뢰회복 발벗고 나서야”【뉴욕=김인영 특파원】 A상사 뉴욕 현지법인은 11일 그동안 거래하던 미국계 은행과 한국계 은행 뉴욕지점으로부터 더 이상 수출신용장(LC)을 받아주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사가 동시에 한국에 대한 신인도를 떨어뜨리자 한국계 은행마저도 LC를 거절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다 DA(수출어음만으로 선적서류를 내주는 일종의 외상거래)마저도 인정해주지 않아 서울 본사와 미국 현지법인간의 어음 거래마저 끊겨버렸다. 자금담당 K부장은 『은행들이 LC나 DA를 개설해주지 않으면 본사와 현금 거래만으로 물건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데 가뜩이나 달러가 부족하기 때문에 수출 길도 막히게 됐다』고 울먹였다. 정부가 펀더멘털(기초여건)이 좋다고 한 것이 수출을 두고 한 말이었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이 상대적으로 좋아지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금융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펀더멘털도 무너졌고, 수출전선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미국 은행들이 자금을 풀어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한국에서 자금을 빼고 보자는 분위기라고 현지 상사원들은 전한다. 미국은행에 가서 자금 요청을 하면 오는 18일 한국의 대통령 선거 이후에나 보자거나 한국의 은행 결산 시점인 연말(30일)까지 두고 보자고 한다. 또다른 B상사의 P사장은 『우리가 외채를 갚는 길은 수출 드라이브 뿐인데 미국 은행들은 물론 한국계 은행마저도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 8% 보유 의무를 충족시키기 위해 LC를 개설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C지사장은 현금(달러) 부족이 심해지다보니 본사와 해외 지사간에도 서로 현금을 챙기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한국계 은행과 상사의 미국 현지법인 사이의 관계는 지난달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협상 때부터 금이 갔으며, 협상 타결후 국내 금융 위기가 가속화하면서 아예 단절된 상태다. 금융기관들도 죽을 맛이다. 이날 상오 산업은행 뉴욕지점은 단기 채권 발행을 위해 주간사 은행인 JP 모건과 마지막 협상을 가졌다. JP 모건측은 전날보다 엄청난 값을 불렀다. 전날 미재무부채권(T)+4백bp를 불렀는데 하루만에 가산금리를 5백∼8백bp까지 올려부른 것이다. 뉴욕 채권시장에서 가산금리 3백bp 이상부터 정크본드로 분류하는데, 국책은행인 산은 채권은 정크본드 가운데서도 인도네시아나 태국의 채권보다 낮은 최악의 수준으로까지 내려앉은 것이다. 산은 뉴욕지점측은 『이제 한국의 자금공급줄이 다 끊겼다고 보아야 한다』고 한숨을 지었다. D상사의 L지점장은 『미국은행은 12월말에 결산을 하므로 기업에 대한 자금줄을 조이고 있다』면서 우리기업이 이 시점에서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행이 3월말 결산이므로 곧 신용을 조여올 것이며, 미국은행들도 일본 은행의 태도를 보고 한국 기업에 신용을 조여올 것이므로 내년 2월말이 더 큰 고비라고 걱정했다. 뉴욕 주재 한국 기업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IMF와 미국의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사의 뉴욕 지사장은 『한국은 IMF 조건을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IMF 조건보다 한발 앞선 태도를 보여야 외국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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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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