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출자총액제 논쟁과 그 주역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상의 초청 최고경영자(CEO) 강연에서 “원천 봉쇄형 규제는 완화하겠다”고 말한 데 이어 새로 취임한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도 ‘제도적 대안 모색’을 전제로 출총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혀 출총제 폐지론은 탄력을 받는 양상이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도 ‘서민경제위원회’를 통해 출총제 개선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고, 재계도 규제 완화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올 하반기 내내 출총제를 둘러싼 격론이 예상된다. 출총제 폐지론이 공론화한 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출총제는 외환위기에 따른 대기업 구조조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던 2001년 한해 동안 가장 뜨거운 경제 이슈였다. 출총제가 98년 정부와 재계의 합의에 따라 그해 4월 부활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무렵 경제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2000년 경제성장률이 2.3%로 추락하면서 그해 봄부터 경기부양론이 고개를 들었다. 내선을 앞둔 DJ 정권은 개혁 기조의 유지보다는 경기부양을 선택했다. 청와대의 사인이 떨어지자 재정경제부는 출총제를 비롯한 규제 완화책을 꺼내들었다. 부동산과 카드 규제 완화도 이 무렵의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5년 전 출총제를 둘러싼 논쟁의 주역들이 현재의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했다는 점이다.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권오규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병원 재경부 제1차관은 당시 차관보와 경제정책국장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규제 완화 작업을 이끌었던 장본인이다. 권 차관보는 당시 “규제의 합리적인 개편(Re-regulation)이지 완화(De-regulation)가 아니다”며 제도 개선을 밀어붙였다. 출총제 개선안은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격론이 벌어졌다. 노무현ㆍ김근태 최고위원 등이 개혁 기조 후퇴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으나 대선을 앞두고 논쟁은 흐지부지됐다. 최고위원에서 물러난 노무현ㆍ김근태 고문은 대선 후보로 부각되면서 오히려 규제 완화론자에 가까웠다. 반면 기업인 출신으로 당시 기획조정위원장이던 정세균 의원은 “재벌 규제가 규제 완화라는 미명하에 후퇴하고 출총제가 경기부양론에 밀려서 폐지되면 안된다”며 개혁 기조 후퇴에 강력 반대했었다. 그가 5년 전 출총제 폐지에 앞장섰던 산업자원부의 수장이라는 점과 노무현 대통령과 김근태 당 의장이 재벌 개혁론자로 비쳐지는 모습은 아이러니다. 앞으로 논의될 출총제 문제에 대해 당시의 주역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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