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31일 『투신사 구조조정은 채권에 대한 시가평가가 시작되는 내년 7월을 전후해 할 생각이다』고 밝힘에 따라 구체적인 투신 구조조정의 형식과 내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李위원장의 언급은 그동안 투신 구조조정 일정을 계속 지연시켜 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현 정부 집권 후반기로 접어드는 내년 중순이후로 다시 구조조정 일정을 미룸에 따라 『사실상 투신 구조조정은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투신 구조조정과 채권 시가평가와의 관계=채권 시가평가는 투신권의 「핵심 뇌관」이다. 내년 7월부터 채권 시가평가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면 그동안 장부가 평가로 가려져 왔던 펀드 운용내역이 그대로 드러난다. 어느 투신사, 어느 펀드가 우량한지 불량한지가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채권 시가평가의 위력은 현재 투신권 수탁고 구조를 보면 보다 명확하다. 투신권의 총 수탁고는 3월26일 현재 262조원 규모로 이중 채권형(장. 단기 공사채형)이 85%인 223조원을 차지하고 있어 이 223조원이 「이동가능대상」이 될수 있다.
따라서 채권 시가평가의 전면실시는 사실상 「투신권 구조조정 시작」으로 받아 들인다. 시가평가 전면실시로 자금의 대이동이 시작되면 부실투신 정리를 기반으로 하는 투신권 재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투신 구조조정의 어려움=사실 금감위는 올초부터 투신 구조조정에 대한 본격적인 실무검토작업에 착수했었다. 주요 방향은 주인이 있는 투신사는 주인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하고 주인이 없는 투신사는 공적 자금을 투입해 「클린 투신」으로 만든 뒤 국내외 희망자에게 매각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3월초부터 이같은 실무검토작업은 모두 중단됐다. 금리, 주가등 투신 경영수지에 큰 영향을 미칠 변수들이 시간이 갈수록 유리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이다. 굳이 구조조정 시기를 앞당겨 비용(국민부담)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금감위의 실제 고민은 다른데 있다. 첫째 260조원이라는 투신권의 엄청난 수탁규모가 흔들릴 경우 우리나라 전체 금융시장, 경제 전체에 미칠 파장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실무적으로도 어려운 점이 많다. 우선 투신권 상품은 모두 실적배당상품이다. 당연히 예금자보호대상도 아니다. 따라서 투신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지만 투입명분이 없다. 만일 투신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그동안 은행신탁등 다른 실적배당 상품을 다룬 방식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 하나는 정부가 돈이 없다는 점이다.
◇전망=李위원장은 내년 7월이후 투신 구조조정에 착수한다고 했지만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내년은 현 정부의 집권 후반기로 접어드는 해이다. 내각제 문제등 각종 정치현안이 불거지면서 개혁의지가 급속히 쇄퇴할 수 있다. 李위원장이 내년 7월까지 위원장자리를 지키고 있을 지도 미지수다.
【안의식 기자】ESAH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