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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살림예술가, 한복 디자이너, 보자기 아티스트, 공간예술가, 라이프스타일리스트 등 이효재(57·사진)의 호칭은 많다. 그런 그가 이제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생활문화 아트숍 '효재네 뜰'을 운영하는 ㈜효재 대표다. ㈜효재는 첫 작품으로 '효재네 뜰'을 열었다. 충청북도 제천의 리솜포레스트리조트에서다. 그는 아직 '대표'라는 이름에는 익숙하지 않다. 아직은 그냥 효재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 대표는 '효재네 뜰'을 스타벅스를 능가하는, 한국적 스타일의 아트숍 체인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새로운 명품 브랜드 '효재네 뜰' 오픈=충청북도 제천시 백운산자락에 위치한 리솜포레스트리조트에 가보자. 본관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길옆 오른쪽에 작은 팻말이 보인다. '효재네 뜰 2015'라고 적혀 있다. '2015'는 뭘까. '효재네 뜰'이 시작된 연도라고 한다. 바로 올해다. 지난 6월13일이 탄생일이다. 회사의 설립연도를 단단히 박아놓고 시작하는 것이다. '효재네 뜰'이 50년, 100년 이어지는 명품 브랜드가 되기를 바라면서다.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단층짜리 단독건물이 나온다. '효재네 뜰' 1호가 입점해 있는 건물이다. 백열전구가 비추는 고풍스러운 공간에 앞치마·손수건·베개·부채·자기·찻잔·빗자루까지 다양한 생활공예품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이 대표가 직접 만들거나 국내 명인들로부터 공급받은 것이란다.
기자가 머물러 있던 한 시간 남짓 동안에도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구경하기도 하고 물건을 사기도 했다. 물건값이 싸지는 않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땀 한땀 수놓은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다. 옆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방에서는 자수를 놓거나 다도를 배울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실제 운영한다.'효재네 뜰'의 핵심은 사실 앞마당이다. 잔디와 이끼로 덮인 앞마당은 바로 이곳이 자연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옆을 흐르는 시냇물에는 올챙이가 잔뜩 붙어 있다. 이 대표는 "이제 우리도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누릴 때가 됐다. 한국적인 생활문화 명품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생활문화 아트숍 '효재네 뜰'은 이번 1호점을 바탕으로 조만간 대구와 부산 등지에 체인을 확대할 예정이다. 서울 성북동의 본점이라고 할 수 있는 '효재'는 서울의 '효재네 뜰'이 됐다. 서울 강북에 이어 강남에도 체인이 예정돼 있다.
◇한복 디자이너에서 살림예술가로=이 대표의 직업을 딱 꼬집어서 말하기는 쉽지 않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운영하던 한복집을 물려받아 한복 디자이너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김치 담그기, 이불 만들기, 보자기아트, 옹기 등 입고 먹고 집 꾸미는 살림살이에 관한 모든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한국의 마사 스튜어트' '한국의 타샤 튜더' 등으로도 불린다. 그가 현재 운영하는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정문 맞은편에 있는 한복집 '효재'는 많은 이들이 들락거리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상호로 썼다. 개인 이름이 가게 이름으로, 이제는 회사 이름으로까지 발전한 셈이다.
그는 "예쁜 것을 어려서부터 좋아했다. 엄마의 뜨개옷을 풀어 생긴 실로 동생 옷도 떠주곤 했다. 김치전을 예쁘게 부치고 싶어 겨울에는 미나리 싹을 따로 키운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바지런한 습관은 지금까지 그의 재산이다. 한복집을 열면서도 인테리어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6개월에 걸쳐 손수 꾸몄다고 한다. '효재'는 한류 스타 배용준이 쓴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에 소개되면서 일본 관광객들에게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이제 효재가 문화관광상품이 된 것이다.
서울시 환경홍보대사, 국립공원 홍보대사,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 홍보대사, 대한민국식품대전 홍보대사 등 직함도 많다. 틈틈이 글을 써 '효재처럼, 보자기 선물' '효재처럼 살아요' '효재, 아름다운 나라에서 천천히' '시가 있는 효재 밥상' 등 많은 책도 냈다. 최근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호칭은 '보자기 아티스트'다. 어떤 물건을 보자기로 싸는 행위는 우리 고유의 전통이다. 이 대표는 이를 거의 예술로 발전시켰다. 이 대표에게는 보자기가 "다치고 멍든 상처는 감싸주고 아프고 쓰라린 고통은 덮어주는 넉넉함"이라고 했다. 또 "선물을 속에 담은 경우 종이 포장은 '뜯어야' 하지만 보자기 포장은 천천히 '풀어야' 한다. 이는 삶에서 여유와 멋을 찾는 행위"라고도 한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한 도예작가가 만든 프란치스코 흉상이 전달됐는데 이 대표가 이것을 보자기로 포장했다. 이에 대해 그는 "여인이 시집갈 때 다홍치마에 연두저고리를 입듯 교황께 올릴 보자기는 빨강과 연두를 배색해 순결을 표현했다"고 한다.
◇주부들의 '멘토'가 되다=이 대표는 살림살이에 관한 한 지금도 대부분의 일을 손수 한다. 선물을 보자기로 싸기도 하고 마당의 풀도 뽑는다. 꽃을 가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살림살이도 충분히 창조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다고나 할까. 성북동 '효재'는 아래층 매장, 위층 살림집으로 구성돼 있는데 집마당에서 첫 인터뷰를 할 때 손은 줄곧 풀에 가 있었다. 잡초를 뜯는 것이다. 한시라도 가만히 있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다. 별달리 손대지 않은 긴 생머리, 수수한 흑백의 옷차림에 이런 부지런한 모습이 나이를 훨씬 적게 보이게 한다. 그가 주부들의 멘토가 된 이유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여성들의 편지가 지금도 잇따른다. 편지라고? 인터넷을 하지 않는 이 대표에게는 손편지가 온다. 방송이나 언론의 취재 요청에 긍정적으로 응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바쁘다는 핑계를 댈 만하지만 그런 법은 없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이 대표는 "보다 많은 사람이 좋은 생활을 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대중을 상대로 여러 가지 형식의 강연이나 교육을 다니지만 결국은 언론이 이런 생각과 태도를 전하는 좋은 통로라는 이유에서다.
◇"㈜효재를 대표 문화 콘텐츠 기업으로 만들 것"=이번에는 살림예술가에서 기업 대표로 변신했다. 한국에도 명품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5월 ㈜효재를 설립하고 대표가 됐다. 브랜드 작업을 위해서는 기업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영국에 갔을 때 농장에서 가축을 기르는 주부가 주말에는 멋있게 차려입고 뽐내는 것을 봤다. 일과 여유를 모두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왜 그런 '중산층다운, 품위 있는 생활을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효재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우선은 생활문화 아트숍 '효재네 뜰'의 브랜드·체인화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많은 이들이 '효제네 뜰'을 사랑방으로 삼고 생활공예품을 이용하며 여유를 찾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장기적으로는 의식주와 예술 퍼포먼스, 문화 콘텐츠를 아울러 제공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다.
사진=송은석기자
생활문화 명장 제품으로 한류 새바람 일으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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