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 정부는 아베 담화가 "역대 내각 담화의 역사인식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고 한국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출발시키고자 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특히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 12일 “아베 담화가 향후 양국관계 개선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아베 담화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이날 패전 50주년과 60주년에 각각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 고이즈미 담화의 4개 핵심 키워드(식민지배·침략·사죄·반성)를 모두 언급했음에도 전후세대에 사죄할 숙명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등 역대 내각의 담화에서 대폭 후퇴한 담화를 발표함으로써 과연 주변국과 화해하려는 의지와 진정성이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가운데 올해 하반기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으로 꼽히는 만큼 아베 담화의 결과를 대일 외교전략에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다음달 3일 중국의 항일 승전 70주년 기념행사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각각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이 자리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3월 개최된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는 이른 시일 내에 한중일 정상회담을 열자고 합의했지만 그동안 중국 측의 유보적 입장 등으로 지연돼왔다.
아베 담화 발표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아베 담화가 역대 담화에 비해서는 부족하지만 핵심 키워드가 모두 포함된 점,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간접적 반성이 있었던 점은 평가할 만하다고 보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일본학연구소장)는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 관련 언행 하나하나에 우리가 너무 흔들릴 필요는 없다"면서 "일본과의 관계에서 실익이 무엇인지를 기준으로 생각해 과거사와 경제 및 안보 문제를 분리해 투트랙으로 가져가는 것이 합리적인 정책"이라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아베 총리와는 달리 상당수의 일본 국민들은 역사 화해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희망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일본을 다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