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를 방문했다가 현지 초등학생들에게 난데없이 한류스타 대접을 받게 됐다. 이들은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한국인을 실제로 보게 되자 앞다투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말을 붙이며 그간 갈고 닦은 한국어 실력을 뽐내고 싶어했다. 함께 사진을 찍자며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는가 하면 사인을 해달라는 꼬마도 있었다.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평소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더니 과연 한국에 대한 이 국가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한 국립대 교수는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한국에 다녀왔다"고 아는 척을 하더니 "내 사위도 고려인"이라며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표시했다. 그는 "한국이 중앙아시아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면서 "한국·카자흐스탄 협력센터가 설립돼 양국 간 협력이 체계적으로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에 대해 애정 공세를 퍼붓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구축해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이들에게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북한에 대한 개방을 유도해 통일 기반을 구축하자니 그럴 듯하다. 이런 구상을 명분 삼아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한국 기업들과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까지 가세해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독려하는 등 남·북·러시아 3각 협력체제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 이들 국가는 그리 좋은 교역 및 투자 대상국이 아니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기업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공산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는 만큼 정권 변화 등의 불확실성도 존재한다. 보호무역주의도 심해 관세 장벽도 높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우즈베키스탄의 자동차 관세율은 100%에 달한다.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발표 이후 현지 진출을 타진하는 한국 기업들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진출이 성사된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다 보니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구체화해야 할 정부 관계자들조차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 자체는 좋지만 각론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정부의 한 관계자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한국 참여에 대해 "경제성이 과연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우리 기업들의 돈만 퍼주다가 실패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아무리 좋은 구상이라도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없다면 망상에 그치게 된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마찬가지다.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내실화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