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요즘 이상해졌다.주요 정책결정 사안을 놓고 실무진과 고위층간에 이견을 드러내는 사례가 빈발하는가 하면, 은근슬쩍 조직확대 방안을 추진하다가 보류당하는 등 중앙 행정부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돌출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재벌개혁이라는 중책을 맡아 일사분란한 일처리를 과시하던 지난 상반기때와는 달라도 너무도 달라진 모습이다.
과천관가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이른바 실세부서 반열에 오르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 같다』는 비판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또 공정위 내부에서는『위원장의 적극적인 의욕을 직원들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의 정책혼선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등 다른 개혁관련 부처뿐만 아니라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 골간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시급히 시정되야 할 사안으로 지목된다.
공정위의 위상재정립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최근 잇따른 공정의의 돌출행동들을 한자리에 모아본다.
○…공정위는 지난 9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1급직 3자리를 확충하는 방안을 포함시켰다가 여당인 국민회의측의 반대로 보류됐다.
공정위는 현재 4명인 비상임위원을 폐지하고 대신 상임위원수를 3자리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외부전문인력 활용을 늘리라는 기존 정부입장과 배치돼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가 일각에서는 『각 부문이 조직축소와 인력감축에 나서고 있는 마당에 공정위만 거꾸로 조직확충을 도모하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공정위는 결국 정부가 구조조정에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이 와중에 조직확충을 추진한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최근 모 주간신문이 경제장관들의 업무성적을 평가한 것과 관련 공정위가 보여준 행동은 가관이었다. 평가결과 전윤철(田允喆)위원장이 가장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용, 지나치게 자화자찬에 나섰던 것.
공정위는 부처별 평가내역을 상세히 분석한 6쪽짜리 보도자료를 작성해 각 부처 기자실에 배포했고,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부처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재정경제부의 경우 공정위 관련 자료를 앞으로 기자실에 일절 비치하지 못하도록 조치하는 등 부처간 갈등양상마저 드러냈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이미 언론에 공개된 내용을 또다시 보도자료로 배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공정위가 타부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자기부처 생색내기에 나서고 있다』고 꼬집었다.
○…상호채무보증 맞교환 허용여부를 둘러싸고 불거진 내부논란은 공정위의 정책결정 과정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열린 제4차 정·재계 간담회에서 5대그룹의 이업종간 상호채무보증을 연내에 모두 해소하도록 촉구하고, 이를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계열사끼리 빚보증을 맞교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전윤철(田允喆)공정위원장도 이같은 대안에 크게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공정위 실무자들의 입장은 달랐다. 현행 공정거래법이 30대 그룹의 신규채무보증을 금지하고 있는만큼 채무보증 맞교환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게 실무진의 해석.
독점국의 한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을 고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채무보증 맞교환 불가입장을 분명히했다.
위원장이 실무진과의 충분한 사전협의없이 중요 정책사안을 합의했다가 뒤늦게 혼란을 불러온 셈이다.
결국 이같은 논란은 위원장의 의지대로 관철됐지만 정책 실무자들은 여전히 불만스럽다는 표정이다. 한 관계자는 『원론적 측면에서 채무보증 맞교환은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결정권자가 허용가능한 것으로 최종 판단을 내린만큼 이에 합당한 방법을 찾게 될 것』이라는 애매한 입장을 밝혔다.
○…대기업 사업교환(빅딜)에 대한 역외적용 가능성 여부도 정책결정 과정의 혼선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田위원장은 2일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빅딜이 미국 공정거래법의 역외적용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빅딜과 관련 외국 경쟁당국이 자료를 요청해 온 사례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나 법무부로부터 공식적인 자료요청이나 문의가 없었고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실무선에서는 여전히 외국 경쟁당국의 역외적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 관계자는 『반도체의 경우 빅딜이 성사되면 국내업체가 세계시장 1,2위를 차지하게 된다』며 『역외적용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짓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 미 연방거래위원회가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빅딜에 대한 세부사항을 문의해 왔다』며 『보다 구체적인 대응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정위는 조사관과 판정관의 두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러나 손발조차 제대로 맞지 않는 현재의 전력으로는 재벌개혁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공정위의 위상재정립을 요구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이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