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돈놀이식 자금운용' 성장저해 우려

■ 기업 여유자금 CP로 몰린다증시불안에 기업들 '초단기금리 따먹기' 치중 "채권수익률은 워낙 낮고 주식시장은 800포인트 아래로 추락하는 등 불안해 단기자금을 운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보유현금 500억원을 모두 기업어음(CP)에 투입해 운용하고 있다."(생활용품업체 L사 재무팀장) "2,000억원 가량의 우리회사 CP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데 현금흐름이 좋은데다 찾는 사람이 많아 1주일 단위로 회수해 다시 발행하곤 한다"(유통업체 S사의 한 관계자) 기업들의 여유자금이 CP시장으로 몰리는 이유와 CP 유통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주식ㆍ채권시장 모두 기업들이 자금을 운용하기에 불안한 상황이어서 초단기 상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용등급이 우량한 기업의 CP만 소화되던 것과는 달리 최근 들어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CP도 거래가 활기를 띠면서 유통규모가 크게 늘고 있다. ▶ 왜 CP시장에 돈 몰리나 기업들의 실적개선과 함께 보유현금이 늘어난 데 반해 이를 운용할 시장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설비투자를 확대하기에는 경기상황이 불투명한 것도 CP 투자 확대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 1ㆍ4분기 말 기준으로 상장기업들은 17조4,5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말보다 현금보유액(CDㆍ은행예금ㆍMMF 포함) 규모가 1조3,192억원이나 늘었고 현대차도 7,023억원이나 증가했다. 또 KTㆍ기아차 등도 1조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CP는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3개월 정도에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 자금의 단기 운용에 적합하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경기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더욱이 초단기 투자이기는 하지만 CP 수익률이 예금금리나 콜금리보다 높아 최소의 리스크 속에서 다른 상품보다 소폭이나마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 메리트로 부각되고 있다. 최은철 조흥은행 CP프라자 과장은 "최근 들어 CP가 안정적인 초단기 운용 투자처로 떠오르면서 문의가 많아졌다"며 "이는 기업자금이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말했다. ▶ 올들어 CP 유통시장 규모 급증추세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CP시장 규모는 45조4,4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증권사를 통해 중개된 물량만 집계한 것으로 은행권 중개까지 합친다면 66조원에 달한다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특히 올들어 CP시장 규모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증권사를 통해 거래되는 CP의 규모는 2ㆍ4분기 들어(5월 말 현재) 1ㆍ4분기보다 4조4,000억원이나 늘어났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CP 중에서는 카드사의 CP가 가장 많고 백화점 등 유통업체의 CP 거래가 뒤를 잇고 있다. 특히 유통업체의 CP는 신용등급이 양호한데다 투자기간도 짧아 시중에서 물량을 구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또 우량기업의 CP에 이어 신용등급이 낮은 CP 거래도 활발해지고 있다. 동양종금증권 금융기획팀의 한 관계자는 "우량기업들의 CP가 품귀를 빚자 자금여력이 있는 코스닥기업들이 단기투자를 위해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CP까지 투자폭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시장왜곡 등 부작용 우려 CP 투자 급증에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기업들의 여유자금이 설비투자 쪽으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떠돌며 초단기 금리 따먹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단기금리 차익만 노리다 설비투자 감소→고용감소→경기회복 지연의 악순환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금융시장의 왜곡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설비투자 등 영업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투자를 뺀 나머지 여유자금은 부채를 갚아 재무구조를 개선시키거나 주식시장 등 직접금융시장으로 들어와 다른 기업들의 자금조달원이 돼야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초단기 투자에 열을 올릴 경우 자금이 증시에 유입되지 않아 시장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업들의 현금운용이 단기화되면 은행ㆍ투신 등 금융권도 단기상품 판매에 치중하게 돼 결과적으로 자금조달시장 자체가 단기화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수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